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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태원 김희영 가족관계 아들 딸 최민정 나이 프로필 이혼 자녀 재산

 

 

프로필

 

나이 : 1960년 12월 3일 출생. 65세

고향 : 경기도 수원시

거주지 : 서울특별시 용산구 한남동

현직 : SK 회장, SK주식회사 대표이사 회장,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서울 SK 나이츠 구단주, 한국고등교육재단 이사장

학력 : 이화여자대학교사범대학부속국민학교 (졸업) - 수송중학교 (졸업) - 충암고등학교 (전학) - 신일고등학교 (졸업 / 10회) - 고려대학교 이과대학 (물리학 / 학사) -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 석·박사 통합과정 수료)

가족 : 아버지 최종현, 어머니 박계희, 남동생 최재원, 여동생 최기원, 배우자 노소영, 동거인 김희영, 장녀 최윤정, 차녀 최민정, 아들 최인근, 삼녀 최시아

신체 : 179센치, 85키로, B형

군대 : 전시근로역

종교 : 개신교

재산 : 약 2조 6,500억 원

 

 

1960년 12월 3일 경기도 수원시에서 선경그룹 최종현 회장의 장남이자 선경그룹 창업주 최종건 회장의 조카로 태어났다.  수송중학교, 신일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이과대학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카고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박 통합 과정을 수료했다.[13]

 



선대회장인 최종현이 1998년 8월 타계하면서 37세에 SK그룹 회장이 되었다. 1992년 SK상사에 부장으로 입사 후 상무를 거쳐 SK주식회사 부사장직을 맡았으며, 이후 SK대표이사 회장에 선임되었다.

 



1998년 8월 26일 최종현 선대회장 작고 당시, 경영권에 관하여 특별한 유언 없이 갑작스럽게 별세함에 따라 SK그룹은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에 휩싸일 수 있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그러나 당초 SK그룹의 경영권을 맡을 것으로 알려졌던 최종건 회장의 장남인 최윤원 SK케미칼 회장의 결심이 큰 역할을 했다. 최윤원 회장은 "우리 형제 가운데 태원이가 가장 뛰어나다"며 최태원 SK그룹 회장을 후계자로 추천했고 만장일치로 최태원 회장이 경영권을 승계하게 되었다. #[15]

 



이에 따라 최태원 회장은 그해 9월 37세의 어린 나이에 SK그룹의 수장으로 경영 최일선에 나서게 된다. 당시 외환위기로 기업 환경이 암울했던 시기에 총수 자리를 물려받은 최 회장은 "혁신적 변화(Deep Change)를 할 것이냐, 천천히 사라질 것이냐(Slow Death)"라는 취임 일성과 함께 생존을 위해 그룹 체질을 바꿔야 함을 강조했다고 한다. #

 



2002년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그룹 CEO 세미나에서는 "생존 능력이 없는 계열사는 흑자라도 정리하겠다"는 내용이 담긴 이른바 '제주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 2005년까지 흑자를 내더라도 일정 수준의 이익을 못내는 계열사는 정리한다는 것으로 '계열사의 3대 생존 조건'으로 사업모델의 경쟁력 확보, 세계적 기업 수준의 운용 효율성, 경제적 부가가치(EVA·영업이익 중 세금과 자본비용을 뺀 금액)가 플러스가 될 것을 설정했다. #

 



이후 SK 글로벌 사태, 소버린 사태라는 위기 상황을 맞았으나 이를 극복하며 지배구조를 개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 특히 2003년에 발생한 소버린 사태는 SK 창사 이래 최대의 위기로 꼽히는데, 모나코에 기반을 둔 소버린자산운용이 SK주식회사의 주식 14%를 매입해 경영권 탈취를 시도한 사건이다. 당시 주주총회서 표 대결까지 간 결과 SK그룹이 팬택앤큐리텔 등 우호 세력, 외국인 주주, 소액주주의 도움으로 승리한 바 있다.

 



이를 계기로 SK그룹과 최 회장은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이사회 중심의 투명경영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하게 된다. 소버린의 압박이 진행되는 동안 SK는 이사회의 70%를 사외이사로 구성, 이사회 중심의 경영을 선언하는 등 위기를 돌파했다.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대폭 개선하며 주주들을 설득하는 한편, 사상 최대의 실적을 내고 글로벌 경영을 강화하면서 신뢰를 얻었다. # 또 2007년 7월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는 데 성공하며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지배구조를 구축했다. #

 



어렵게 위기를 극복한 최 회장은 2008년 9월 최종현 선대회장 서거 10주기 추도식에서 임직원을 향해 큰절을 올리며 "힘겨웠던 SK그룹이 지금의 자리까지 온 건 모두 전현직 임직원 덕분"이라며 감사의 뜻을 표한 것으로 전해진다. #

 



2013년, 선물투자를 위한 회사 자금의 횡령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 2014년 3월 4일에 모든 계열사 대표직 및 그룹 내 회장직에서 물러난 후 1년 뒤, 2015년 8월 13일 광복 70주년 특별사면에 경제인 14명을 포함한 6,527명과 함께 특별사면 되었다. # 이후 SK 회장직에 다시 복귀했다.

 



그가 복귀한 후 SK그룹의 실적은 크게 성장했다. 자산과 매출 규모 등에서 급성장을 이어가 국내 재계 서열 2위로 올라섰고, 기존 주력 분야였던 에너지·정보통신에 이어 배터리·바이오·반도체 등 미래 신성장 분야로 포트폴리오를 넓히며 질적 성장도 이뤘다는 평가다.

 



최 회장 취임 후 25년간 SK그룹 자산총액은 10배, 매출은 6배, 영업이익은 9배 성장했다고 한다. 특히 수출액은 83조4천억원으로 약 10배 성장했는데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2022년 대한민국 전체 수출액 약 887조원 중 거의 10%를 SK그룹이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16]

 



최 회장이 SK를 이끄는 동안 가장 놀라운 사건은 단연 2012년 SK하이닉스 인수로, '신의 한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최 회장은 에너지·화학과 정보통신만으로는 그룹 성장이 더 이상 어렵다고 판단, 사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내외의 이해관계자들을 직접 설득하여 하이닉스 인수를 관철했다고 전해진다. #

 



SK가 2011년 11월 3조 4,267억원에 하이닉스를 인수한다고 발표했을 때에는 ‘승자의 저주’ 우려도 제기되었으나, 인수 후 적극적 기술·시설 투자에 따라 SK하이닉스는 급성장 가도를 달렸다. 인수 첫 해 반도체 가격 하락으로 타 업체들이 투자를 주저할 때 역발상으로 3조8500억 원을 투자했고, 2013년에는 R&D 비용을 1조 원 이상 투자했다. 이러한 투자가 밑거름이 되어 반도체 경기가 호황으로 돌아서자 SK하이닉스는 전대미문의 성과를 올렸다. # 그 결과 하이닉스는 SK 편입 이후 10년간 매출 약 4배, 영업이익은 약 34배 증가했다. SK는 덕분에 재계 2위로 올라섰을 뿐만 아니라 제조업 수출 비중이 70%를 넘어서는 수출지향형 기업집단으로 탈바꿈했다. #

 



기업의 사회적 가치 창출에도 높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4년 10월 옥중에서 ‘새로운 모색, 사회적기업’이라는 저서를 내기도 했으며 경영 복귀 후에 사회적 기업 지원을 확대하는 한편 임직원들에게 사회적 가치 구현을 독려하고 있다. 최 회장은 사회적 가치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사업에 내재화해야 기업 가치를 높여 지속가능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경영지론 하에 그룹 경영관리체계인 SKMS(SK Management System)에 2016년 사회적 가치 창출 조항을 명문화하기도 했다. # 최 회장은 여기에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경영의 두 축으로 동시에 추구하는 ‘더블보텀라인’이라는 개념을 주창하며 사회적 가치 창출의 측정 틀을 만들어 계열사 경영에 직접 적용하고 있다고 한다.

 



모교인 고려대학교에 애정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기부는 물론이고 고려대학교 관련 행사에 종종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8년 2월에는 고려대 졸업식에 참석해 축사를 한 바 있는데, 국내 대기업 총수가 대학 졸업식 연설을 하는 게 이례적이라 눈길을 끌었다. 또한 고려대학교 SK미래관 건물 건립에 사재 300억 원을 출연한 것에 이어 2019년 완공 당시 직접 와서 기념 식수를 한 바 있다. 2020년에는 SK하이닉스의 채용 연계형 전공으로 고려대학교 반도체공학과 학부 과정을 설립하기도 하였다.

 



2017-18 KBL 챔피언결정전에서 SK 나이츠의 경기를 직관했고, SK가 우승하자 헹가래를 받았다. 2018년 9월, 평양에서 개최된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 경제인 대표단 일원으로 방북하였는데, 참석한 재벌 총수들 중 유일하게 두 번 참석했다. 2000년에는 재벌 총수들 중 막내에 속했기 때문에 사진기를 들고 열심히 찍어주느라 바빴지만, 이번 방문 때도 어느 곳을 가든 사진기를 들고 다니며 인증샷을 찍는 걸 보면 사진 찍는 것에 대한 취미가 있는 듯하다.

 



2018년 한국시리즈에서 SK 와이번스가 우승하면서 또 한 번 헹가래를 받았다. 2018년 11월에 회장 취임 20주년을 맞아, 사촌형인 최윤원 고문의 자녀들, 최신원 SK 네트웍스 회장, 동생인 최재원 SK 수석부회장에게 주식을 증여했다.

 



2019년 기업 경영의 최우선 가치를 구성원의 행복에 두겠다고 발표한 후 실제 구성원들과의 다양한 소통 활동들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직원들과 행복을 주제로 대화하는 행복토크 100회를 채우기도 했다. 그 외에도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의 부흥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등의 여러 긍정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

 



2019년 11월 24일, 제주 유나이티드 FC가 강등된 경기인 K리그1 37라운드 파이널 라운드 B 수원전을 직관했고, 이때 크게 분노하며 무슨 일이 있더라도 팀을 다시 승격시키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11개월 후인 2020년 10월 24일 K리그2 25라운드 수원 FC전을 직관하고, 팀이 승격에 성공하자 남기일 감독을 직접 만나 축하하며 "제주는 왜 외국인 선수가 없느냐.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등 투자의 의지를 내비쳤기에 기대가 많다. 2020년 10월 26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빈소를 조문했다.

 



코로나19로 줄어든 무료 급식소에 3개월간 도시락비 또는 도시락 지원을 한다고 한다. 매출이 하락한 영세한 식당에서 도시락을 구매하고 그 도시락을 무료 급식소에 보내는 방식이다. 최태원 "코로나 무서워도 밥은 먹어야"…40만끼 쏜다

 



하이닉스 성과급 논란 당시 30억 원의 연봉을 반납하겠다고 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후 노사 합의를 통해 최근 하이닉스는 임직원 상여 지급 목적으로 4,885억 규모의 자사주를 처분했다.

 



2021년 2월, 중국 장쑤성 지역 경제 발전 공로를 인정받아 명예 시민증을 받았다. 장쑤성에서 SK하이닉스 반도체 공장 등을 운영하고 있는 SK그룹은 현지 인력을 무려 10,000여 명이나 채용하고 있다.

 



2021년 10월 26일 장인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별세하자 미국 출장 일정을 잠시 늦추고 장례식장에 찾아가서 10분 간 조문을 했다. 2022년에도 2번 서울 SK 나이츠의 경기를 직관했다. 홈에서 통합우승을 했는데 하필 그 날이 정치인 취임행사 날이어서 직관을 못 갔다. 우승 뒷풀이에는 참가하여 헹가래를 받았다.

 



2023년 12월 윤석열 대통령의 네덜란드 국빈 방문에 동행했다.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과 함께 반도체 장비 생산 기업 ASML 본사를 방문해 클린룸 생산라인을 함께 살펴봤다. 이날 대한민국과 네덜란드 양국은 반도체 협력 강화 의지를 밝혔는데, ASML과 SK하이닉스는 반도체 생산 과정에서 전력 소비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수소 등 자원을 재활용하는 친환경 공정을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고 한다.

 



계열사 자금 450억 원을 창업투자사에 출자하게 한 뒤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에게 보내 개인적인 선물ㆍ옵션 투자에 사용한 혐의에 대해 최태원은 1심에서 "동생이 한 일"이라고 하였으나 2013년 1월 31일에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되었다. 2013년 7월 29일 "김원홍, 김준홍이 한 일"이라고 주장한 항소심에서 검찰이 봐주기 논란을 우려, 징역 6년을 구형하였으며 동생도 같이 구속되었다. 이후 2013년 9월 27일에 징역 4년을 선고받고 이에 상고하였으며, 2014년 2월 27일 상고심 공판에서 원심과 같이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다.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에서 50억 원 이상 횡령하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징역에 처하나 횡령 금액이 300억 원을 넘으면 최소 징역 4년에 처하는 대법원 양형기준상 최저형으로 선고됐으며 재벌 총수 가운데 이 기준에 따라 실형이 확정된 최초의 사례다. 2년 6개월 수감 생활 후 2015년 8월 14일 박근혜 정권 당시 광복 70주년 특사로 사면 및 복권과 함께 출감하였고 잔형을 면제 받았다.

 



대한핸드볼협회 회장을 맡고 있지만, 실제로 본인이 정작 가장 관심을 두는 스포츠 종목은 농구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같은 그룹의 야구단을 응원하는 일부 팬들은 "농구단에 쏟아부을 돈 있으면 야구단에도 좀 부어줘라!"라고 한탄하기도 했다.[26] 축구의 경우에는 2019년 같은 그룹의 축구단이 K리그2로 강등이 확정된 경기를 직관했다가 엄청나게 화가 났다고 한다.[27] 경기가 끝나고 나서 제주 프런트한테 예산 그대로 유지시킬 테니까 지금 있는 선수들 다 지키고 영입 잘해서 딴 생각 말고 무조건 내년에 승격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고.[28] 그리고 제주는 강등 1년 만에 K리그1로 다이렉트 승격 및 K리그2 우승을 확정지었다.

 



그의 한남동 자택이 재벌 총수 집치고 어마어마해서 화제가 됐다. 위치부터가 재벌 회장들도 탐내던, 한남동 재벌촌 내에서도 최고 명당이다. 지상 2층, 지하 4층으로 무려 6층 규모이며 언덕의 지대 차 덕분에 지하도 한강뷰라고 한다. 준공 기간이 무려 2년 반으로, 호화 주택 치고도 이례적인 공사 기간이었으며 인부들이 지하 공사 중 길을 잃을까 봐 통신을 하며 일을 했다는 후문이 있다.

 



SK하이닉스가 HBM을 계기로 삼성전자 DS부문을 추월하고 메모리 반도체 업계 1위로 올라선다는 전망이 나오는 가운데, 이건희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비틀어 "이건희는 마누라랑 자식 빼고 다 바꾸랬는데 최태원은 마누라까지 바꿔서 삼성을 이겼다"라는 개드립이 유행한다. 기술은 하나도 모르는데 마누라만 바꾸니 당연히 못 이긴다는 이재용에 대한 악담은 덤. 이런 비유는 노소영과의 이혼 소송이 본격적으로 진행된 시기가 하필 SK하이닉스의 비상과 맞물리며 생전 삼성 제국을 이룩한 이건희가 재조명되는 과정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 부모님과 함께 광진구 워커힐에 거주했지만 수송중학교, 신일고등학교 모두 멀어서 학교가 늦게 끝나거나 친구들과 어울린 후에는 성북구 성북동에 위치한 큰어머니댁으로 가서 잤다. 30대 후반에 부모님을 모두 잃은 탓에 큰어머니를 어머니처럼 생각하고 심적으로 의지했으며 늘 고마움과 애정을 표현했다. 큰어머니인 노순애 여사의 임종부터 3일장 내내 빈소를 매일 지키며 상주인 사촌형제들을 도왔고 장지에 모시는 순간까지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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