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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박중훈 나이 프로필 출연영화 아내 부인 딸 안성기 투캅스 근황

 

프로필

 

나이 : 1966년 3월 22일 출생. 60세

출생지 : 서울특별시 성북구 하월곡동

거주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국적 : 대한민국

 신체 : 178센치, 68키로, B형, 왼손잡이

가족 : 배우자 육순, 장남 박배승, 장녀 박소휘, 차녀 박미휘

소속사 : 나무엑터스

학력 : 서울대조국민학교 (졸업) - 대성중학교 (전학) - 한강중학교 (졸업) - 용산고등학교 (35회 / 졸업) -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연극영화학[11] / 학사) - 뉴욕 대학교 대학원 (연기교육학 / 석사)

병역 : 면제

종교 : 개신교

취미 : 목욕

특기 : 영어, 일본어, 태권도, 수영

데뷔 : 1986년 영화 <깜보>

 

 

출연 영화

 

깜보,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 됴화, 칠수와 만수,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 지금은 양지, 내 사랑 동키호테, 바이오맨, 애란, 우묵배미의 사랑, 그들도 우리처럼, 투캅스, 나의 사랑 나의 신부, 게임의 법칙, 마누리 죽이기, 꼬리치는 남자, 총잡이, 돈을 갖고 튀얼, 투캅스2, 깡패수업, 현상수배, 똑바로 살아라, 할렐루야, 인연, 아메리카 드래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불후의 명작, 시에 예스, 찰리의 진실, 황산벌, 투 가이즈, 강적, 천군, 라디오 스타, 해운대, 내 깡패 같은 애인, 달빛 길어올리기, 체포왕, 아리아리 한국영화, 영화판

 

 

박중훈은 TV보단 주로 영화계에서 활동해왔다. 사실 초창기에는 탤런트 시험에도 지원했으나 잘 풀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후 합동영화사에서 깜보라는 영화의 배우를 뽑는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시나리오에 맞춰, 동대문 시장 같은 곳을 다니며 의상을 준비해서 달려갔다.

 

 

 

그러나 다른 배우에게 섭외가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듣자 학교에 안 가고 영화사로 출근을 시작, 매일 아침에 영화사 직원들이 시키는 커피 심부름과 같은 여러 잡심부름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박중훈은 대학교 1학년 때 충무로 상업영화 깜보를 통해 정식으로 데뷔하였다.

 



깜보는 당시 극장 흥행 성적이 그닥 좋진 않았으나 '박중훈'이라는 배우의 존재를 충무로에 확실히 각인시킨 영화였다. 박중훈은 깜보를 통해 그 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남자 신인연기상을 수상하였다.

 



1987년 박중훈은 이규형 감독의 장편영화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에 강수연과 함께 출연하면서 본격적인 청춘 스타로서 발돋움하였다. 지금은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유치한 영화지만 어쨌든 현재 나이든 세대가 기억하는 박중훈의 예능감이라든지 아니면 특유의 유쾌함이 물씬 묻어나는 영화로 이 영화는 그 해 한국영화 흥행 순위 1위를 기록하였다.

 

 

이 영화의 히트로 박중훈은 1980년대 최재성과 더불어 최고의 청춘스타로 인기를 누린다. 최재성이 잘생긴 얼굴로 카리스마 있는 스타일의 스타라면 박중훈은 매우 유쾌하며 밝은 이미지의 스타였다. 두 사람은 1988년, 1990년에 '내 사랑 동키호테',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 라는 영화에 연이어 동반출연하기도 했다. 내 사랑 동키호테는 박중훈이 직접 주제가도 불렀다.

 



1988년 박중훈은 박광수 감독의 영화 '칠수와 만수'에 출연하면서 안성기와 처음으로 같이 영화를 찍었다. 이 작품은 박중훈의 연기에 대중들이 좀 더 관심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박중훈은 이 영화로 1989년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1990년는 장선우 감독의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과 박광수 감독의 영화 '그들도 우리처럼'에 출연하였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민주화에 대한 강한 열망이 들끓던 시절, 박중훈은 사회적인 주제 의식을 지닌 영화의 인물을 연기함으로써 청춘스타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하였다. 그는 '우묵배미의 사랑'으로 그해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부문 남자 최우수연기상을[14], 한국영화평론가협회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한편 박중훈은 최진실과 함께 이명세 감독의 코미디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에 출연하였다. 여기서 박중훈은 미영의 남편 영민 역을 맡아 관객들에게 큰 호평을 받았다. 1991년 한국 영화 흥행 순위 2위를 하는 기염을 토했고, 이 영화로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1993년 SBS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에 출연하여 박중훈은 TV쪽에도 발을 담갔다. 베트남 전쟁에 참전한 황일천 병장 역을 맡아 그 해 열린 SBS 스타상에서 남자 최우수연기상을 수상하였다.

 



1993년, 박중훈은 안성기와 함께 콤비를 이뤄서 강우석 감독의 영화 '투캅스'에 출연하였다. 투캅스는 1994년 국산 1위 흥행 영화였으며 2010년 초반까지 반복되던 전형적인 한국식 코미디 영화의 기틀을 세운 작품으로 강우석이라는 감독에게 대한민국 최고감독의 위치를 안겨줌과 동시에 박중훈과 안성기에게도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을 안긴 작품이다. 안성기와 박중훈의 케미는 그 당시 최고의 케미로 자리매김했다. 박중훈은 투캅스로 1994년에 대종상 영화제에서 안성기와 함께 남우주연상과 인기상을 수상하였다.

 



1994년에는 게임의 법칙에 출연하여 시골 출신 양아치가 뛰어난 실력으로 중간보스 자리에 오르다가 순진한 성격으로 인해 비운의 죽음을 맞는 용대 역을 맡아 느와르 장르의 연기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이 영화로 박중훈은 그해 열린 청룡영화상에서 남우주연상, 인기스타상을 수상하였다.

 



같은 해에는 블랙 코미디 영화 마누라 죽이기에 최진실과 함께 출연하였다. 박중훈은 영화 제작자인 아내가 싫어져 아내를 죽이기로 결심하는 공처가 박봉수 역을 맡았다.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중 하나다.

 



이후 박중훈은 1995년 <꼬리치는 남자>,<돈을 갖고 튀어라>, 1996년 <투캅스 2>, 1997년 <할렐루야>, <인연> 등의 코미디 영화들에 연이어 출연하여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국민 배우로 불릴 만큼 큰 입지를 가진 배우가 되었다.

 



청룡영화상과 대종상에서 남우주연상과 인기상을 휩쓸었을 정도로 상복도 좋았다. 특히 청룡영화상에서는 94,95,96,97년까지 4년 연속으로 인기스타상을 수상하였고 4연속으로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다.

 



2001년에는 헐리우드 영화 <챨리의 진실>에 캐스팅되면서 대한민국 배우들 중에서는 최초로 헐리우드에 진출한 배우가 되기도 했다.[15]

 



2013년 10월에 영화 감독으로도 데뷔했다. 첫 연출작 제목은 톱스타. 엄태웅, 김민준, 소이현이 주연을 맡았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흥행은 하지 못했다. 2014년 중국에서 리메이크했다.

 



2017년 드라마 나쁜 녀석들: 악의 도시로 TV에 모습을 비추면서 컴백하였고, 라디오 스타, 국경 없는 포차 등 예능에 출연했다가 다시 활동을 중단하였다.[16]

 



2025년 작가가 되어 자전적 에세이 '후회하지마'를 발간하고 기자간담회도 가졌다.# 이후 전국을 돌며 일반인들과 문화센터 등에서 일종의 토크쇼도 가졌다. 이때 본인이 밝힌 바에 의하면 후배 차인표의 추천으로[17]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또 본인이 남들이 보기엔 나름 성공해 후회하는 과거가 별로 없을거 같지만, 생각보다 과거 이러지 말걸 하고 이불킥하고 싶은 경우가 많다고 한다.

 



1987년 이규형의 최대 흥행작인 <미미와 철수의 청춘스케치>라는 영화에 강수연과 같이 출연하여 흥행에 성공해 청춘 스타로 자리 매김했다. 참고로 극중 후반부에 갑자기 철수가 머리를 박박 밀고 나오는데(극중 군대 입대 때문에) 실제로 박박 밀었던 거였다. 감독이나 제작진은 원래 가발을 씌우던지 하여 처리하려고 했더니 박중훈은 가발보다는 진짜로 밀어버리는 게 사실적이라고 하여 스스로 밀어버렸다고 한다.[18]

 



이 당시 영화계에서 청춘 스타라고 하면 박중훈과 최재성 정도.[19] 실제로 두 사람은 내 사랑 동키호테, 아스팔트 위의 동키호테라는 영화에서 같이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내 사랑 동키호테는 박중훈이 직접 주제가도 불렀다.

 



이후 박중훈은 칠수와 만수로 인연을 맺은 안성기와 많은 영화에서 콤비로 출연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20] 나의 사랑 나의 신부와 마누라 죽이기에서는 최진실과, 1995년 꼬리치는 남자, 1997년 인연에서는 김지호와 같이 출연한 코미디 영화들도 흥행을 거두면서 1990년대 '충무로의 흥행 보증수표'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는다.[21] 박중훈은 1993년 <투캅스>, 1994년 <마누라 죽이기>, 1995년 <꼬리치는 남자>, <돈을 갖고 튀어라>, 1996년 <투캅스 2>, 1997년 <할렐루야>, <인연> 등의 코미디 영화에 잇달아 출연하며 1990년대 대한민국 영화계를 이끌었다.

 



박중훈이 출연한 작품들 중 가장 흥행한 영화들이 코미디 영화인 탓에 대중들에게 코미디 전문 배우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박중훈을 단순하게 한 시대를 풍미한 코미디 배우로만 여기면 곤란하다. 사실 민주화의 열기가 뜨거웠던 1990년대 초반까지 제작된 한국 영화는 주로 사회성이 짙은 진지한 영화들이었고 본래 박중훈도 이러한 무거운 주제의 영화들에 주로 출연하였다. 그러나 이후 주연으로 출연한 가벼운 코믹물인 투캅스가 흥행하고 충무로 남자 배우가 지금처럼 연령층이 다양한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박중훈이 코미디 영화에 자주 출연하게되자 대중들이 박중훈을 코미디 전문 배우로 인식하였을 뿐이다. #

 



초반에는 단독 출연하여 랄라라 댄스만 선보였지만, 이거 하나로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고 중반부터 최종원과 콤비를 이루어 코믹 스타일로 전환하면서 엄청나게 인기를 끌기 시작하였다.

 



특히 1997년 최종원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광고 '라면 한 박스'[22] 그리고 '펭귄'[23] 편에서는 소비자 반응이 가히 폭발적이었고, 1997년 당해 소비자가 꼽은 최고의 광고로 선정되기도 했을 정도며, 박중훈-최종원 콤비의 OB 라거 시리즈의 시초가 되는 매우 의미있는 광고다. 이후 아이돌 그룹 god의 박준형도 이 광고에서 중간 합류하여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사실 이렇게 장기간 동안 OB 라거 광고를 한 이유는 위에 언급한 랄랄라 댄스와 여러 광고들이 상당한 인기를 끌기도 했지만, OB 고위층 임원이 어느날 술집에 갔는데, 우연히 박중훈이 OB 라거의 경쟁사의 맥주가 나오자 자기가 OB 모델인데 다른 술 먹으면 안된다면서 가게에 그 술이 없으면 자기가 돈 줄테니 나가서라도 사 오라고 하는 모습을 보고 반해서 전속모델 재계약을 맺은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로 광고주들은 전속 모델에게 이런 조항을 의무화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영화계에서 칠수와 만수로 시작하여 투캅스 시리즈,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처럼 상당히 많은 작품에서 지금은 고인이 된 배우 안성기와 콤비를 이루었다. 박중훈에게 안성기는 사실상 인생의 절친이다. 물론 나이는 안성기가 훨씬 많다. 박중훈 본인 역시도 친한 형동생처럼 지낼 수 있는 건 안성기 선배가 워낙 배려심과 인간성이 좋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고 자신은 이에 매우 영광스러움을 느끼면서 편하게 지내더라도 마음속으로 존경심을 잃어본 적이 없다고 한다. 자신이 수십년 본 안성기는 방송이나 언론에 비춰진 자상하고 따뜻한 모습과 실제 모습이 언제나 오차없이 똑같을 정도로 인격적으로 훌륭하여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선배라고 했다. 안성기 선배가 한 날은 꿈에서 미녀가 자길 유혹한 얘길 해줬는데, 어떻게 됐냐고 물으니 그 유혹에 넘어가면 안될 것 같아 (꿈임에도) 거부했다며 선배가 성직자같은 삶을 살았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다만 박중훈 왈 안성기 선배도 화를 안내는게 아니라 화가 날 일이 있으면 상대방이 알 수 있게 직설적으로 표현하지만 상대가 민망하지 않게 표현하는 법이 탁월했다며, 그런 점을 본인도 배웠어야 했다고 후회하기도 했다.

 



신인 시절 실제로는 1966년 3월 생인 자신이 학창 시절 친구들은 1965년 3월 ~ 1966년 2월생들이고 연기 생활하기에 너무 어려 보인다고 생각해 데뷔 직후 1964년생이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동갑인 줄 알고 친구가 되었던 1964년생 최재성이 나중에 그가 1966년생인 걸 알게 되었으나 대인배의 마음으로 친구를 계속 유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에 대해서 박중훈은 자기 나이 40이 넘고 나서도 매우 고마움을 느낀다고 한다. 그런데 1963년생인 김세준 역시 어찌된 영문인지[58][59] 처음에 박중훈이 1964년생이라고 하자 1살 차이인데 그냥 친구하자며 박중훈과 친구가 되었는데 이는 최재성의 경우보다 박중훈의 입장에서는 더 심각해진 일이다. 훗날 결국 박중훈이 사실을 털어놓자 꼼짝없이 형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박중훈이 드라마에 출연한 것은 SBS 창사특집으로 방영된 드라마 《머나먼 쏭바강》에 주인공 황일천 역으로 출연한 것이 유일했다. 1993년 11월 초에서 1994년 1월 말까지 방영된 작품으로 박중훈, 이경영, 이창훈, 이기영, 성동일, 권해효, 오대규, 김의성, 박근형, 박영지 등이 출연했으며 베트남계 배우들을 출연시켜 리얼리티를 높였던 작품이기도 하다. 박영한의 소설이 원작이고 극작가 이윤택이 극본을 담당한 작품이며 변우민, 최수종 등이 주인공 황일천 역으로 거론되기도 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머나먼 쏭바강에 출연한 베트남계 프랑스 여배우 린 당 팜은 1993년 11월에 방영이 시작된 머나먼 쏭바강에 이어 1994년에 개봉한 한국 영화 라이 따이한에 연속 출연, 한국배우 이창훈과 연이어 함께 연기하는 인연이 생기기도 했다. 린 당 팜은 까뜨린느 드뇌브 등이 출연한 1992년 개봉 영화 《인도차이나》에도 출연했다.

 


2007년 대종상 시상식에 기획상 시상자로 나와서 동료 배우들 성대모사를 보여줘 시상식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고, 후에도 인터넷에서 꽤나 많은 화제를 불러 모았다.[62] 아래 영상에서도 보이듯 성대모사 당한 본인들의 빵 터지는 반응도 볼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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