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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준표 프로필 나이 고향 학력 부인 이순삼 자녀 가족 아내 종교

프로필
나이 : 1954년 12월 5일 출생. 71세
고향 :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면 남지리 서동마을
거주지 :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 아시아선수촌
본관 : 남양 홍씨 당홍계
현직 :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명예회장, 사단법인 청년과미래 고문위원, 상생과통일 포럼 고문
가족 : 아버지 홍범용, 어머니 이일갑, 이복형 홍윤표, 누나 홍길순, 누나 홍옥순, 여동생 홍영순, 배우자 이순삼, 장남 홍정석, 차남 홍정현
학력 : 남지국민학교 전학 - 대구신천국민학교 전학 - 대구신암국민학교 전학 - 창녕국민학교 전학 - 합천학남국민학교 졸업 - 영남중학교 졸업 - 영남고등학교 졸업 -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 학사
병역 : 육군 제35보병사단 이병 복무만료
종교 : 개신교
신체 : 169센치, 63키로, A형
소속 정당 : 무소속
의원 대수 : 15, 16, 17, 18, 21 (5선)

약력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제14기 사법연수원 수료
청주지방검찰청 검사
부산지방검찰청 울산지청 검사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특수부 검사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 형사1부 검사
광주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
서울지방검찰청 강력부 검사
법무부 특수법령과 검사 (문민정부)
국가안전기획부 국제범죄수사지도관 (문민정부)
제15대 국회의원 (서울특별시 송파구 갑 / 신한국당)
제16대 국회의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을 / 한나라당)
한나라당 원내부총무
한나라당 제1정책조정위원장
제17대 국회의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을 / 한나라당)
제17대 국회 후반기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혁신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위원장
제18대 국회의원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을 / 한나라당)
제15대 한나라당 원내대표
제18대 국회 전반기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
한나라당 수석최고위원
제10대 한나라당 대표최고위원
제14대 여의도연구원 이사장
한나라당 상임고문
제35·36대 경상남도지사 (민선 5·6기 / 새누리당)
경남 FC 구단주
제19대 대통령 선거 자유한국당 후보
초대 자유한국당 대표
제21대 여의도연구원 이사장
제21대 국회의원 (대구광역시 수성구 을 / 무소속)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 후보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상임고문
제35대 대구광역시장 (민선 8기 / 국민의힘)
대구 FC 구단주
대구테크노파크 이사장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 명예회장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임시회장
국민의힘 상임고문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 선거 예비 후보

대한민국의 검사 출신 前 정치인. 5선 국회의원, 한나라당 당대표 및 원내대표, 재선 경상남도지사, 자유한국당 제19대 대통령 선거 후보, 자유한국당 당대표, 대구광역시장을 역임한 거물 정치인으로, 헌정사상 최초의 민선 복수 광역자치단체장의 기록을 세웠다. 2025년 4월 29일, 국민의힘 제21대 대통령 후보 경선 탈락을 끝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1953년 11월 20일(음력 10월 14일), 경상남도 창녕군 남지면 남지리 서동마을에서 2남 3녀 중 넷째이자 차남으로 태어났다. 아명은 홍이표이며 이후 다시 바꾼 이름은 홍판표(洪判杓)였다. 그의 아버지는 무학에다 소작농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울 수밖에 없었고, 어머니는 문맹이었다. 5.16 군사정변 직후 박정희 군사 정부가 고리채 정리 조치를 발표했을 때, 어머니가 법에 따라 고리채를 신고했음에도 사채꾼에게 머리채를 잡혀 보복을 당하는 모습을 목도한 바가 있다고 한다.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창녕군, 합천군, 대구시 등지로 자주 이사를 다녔다. 그나마 학창 시절에 가장 오랫동안 산 곳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한 대구라서 스스로 '대구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생각한다고 하지만 어린 시절에 워낙 이곳저곳을 옮겨 산 것 때문에 고향에 대한 개념은 딱히 없다고 한다.

국민학교 시절에 6군데나 전학을 다녔는데 1학년 때부터 4학년 때까지는 매년 전학을 다녔기에 학년마다 재학했던 학교가 다 다르다. 그러다 보니 친구를 사귈 수 없어 공부에만 전념했다고. 누구보다도 열심히 공부했고 항상 1등을 차지했다. 하지만 영양 부실로 인해 국민학교 졸업 당시 키가 겨우 124cm에 불과할 정도로 왜소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지만 도시에서 공부해 보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해서 합천군을 벗어나 대구시 영남중학교에 진학했다. 숙식은 대구 직물 공장에 취직한 누나 방에 얹혀 살며 해결하기로 했다. 억수 같은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부친과 8km를 걸어 대구행 버스를 탔는데, 무거운 지게를 진 부친 뒤에서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하여 절대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고 한다. 대구 대명동 사글세방에서 누나들이 싸주는 꽁보리밥 도시락을 먹고 공부했다. 심지어 도시락도 없이 혼자 운동장에서 수돗물로 배를 채울 때도 많았다.

그러다 결국 홍준표 하나 때문에 결국 온 가족이 대구로 이사 왔다. 비가 오면 물이 새는 셋방 단칸에 온 가족이 함께 살았다. 어머니는 사과 행상을, 아버지는 막노동을 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가족들이 모두 잠든 밤에도 하루 4~5시간만 자고 공부해 영남중학교에서도 1등은 그의 차지였고 학교도 전액 장학생으로 다녀 수업료도 면제였으나, 대경권의 명문고인 경북고등학교가 아닌 영남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경북고는 장학금을 주지 않아서 영남고로 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영남고가 이른바 똥통학교는 아니고 그 지역에서는 나름 괜찮은 학교였다. 하지만 경북의 일류 명문고이며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본인에게 콤플렉스였고, 향후의 출세에도 핸디캡이 됐다.

심지어는 대학교 1학년 첫 미팅 자리에 경북여고 출신 이화여자대학교 학생이 나왔는데 그녀에게 자신도 대구 출신이라고 밝히니 "집이 대구면 경북고등학교 몇 회 졸업생이냐"고 물어봤고 경북고가 아니라고 하자 (경북대)사대부고 출신이냐고 묻고 사대부고 출신도 아니라 하자 그럼 어느 학교냐고 묻자 "영남고등학교다" 그랬더니 답변이 끝나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고. 이때 상처를 받은 이후로 이대생들을 싫어하게 되었으며, 미팅 같은 활동도 다시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출신 고등학교에 대한 콤플렉스는 검찰 생활까지 이어졌는데, 명문 고등학교 출신들이 즐비한 검찰 조직 내에서도 멸시를 받았다고 한다. 중학교-고등학교 동문들끼리 끌어주고 밀어주는 문화가 만연하여 비주류의 설움을 느껴야만 했고, 법학과 졸업생도 아니었으며 빽 없고 가난한 흙수저 출신인 것까지 더해져서 검찰 내에서도 그야말로 개무시당했다고 한다. 그는 커리어 내내 아웃사이더 또는 비주류를 자처했는데, 그 원인으로 출신 고등학교에 대한 열등감, 자신의 가난했던 집안 배경 콤플렉스를 꼽는 사람이 있다.

원래는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고등학교 때 원래 이과생이었다. 경북대가 국립대라서 학비가 저렴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그마저도 진학할 형편이 못 되어, 아버지가 학비와 생활비가 일절 들지 않으면서 학사 학위도 함께 나오는 육군사관학교에 진학하라고 해서 육사 시험을 보고 최종 합격 통지까지 받았다.

육사를 특차로 이미 10월에 합격을 해놨으니 학교에 더 나갈 필요가 없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러나 대구시 토박이가 아닌 아버지가 시장통에서 무시당하는 것도 모자라 그해 12월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말도 못 하는 모습을 보고 힘없는 이들을 돕는 검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당시 육사를 합격한 자연계생 홍판표가 갑자기 선생에게 고려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하겠다고 입학 원서를 써달라고 하자, 선생이 "우리 학교에서 고대 법대를 보낸 적이 없는데, 1년에 한두 명 붙는 육사 붙었으면 그냥 거기 가지 그러냐, 내가 너 합격하면 장을 지진다."라고 했다고 한다. 아버지 역시 걱정이 많았다. 아버지는 처음에 아들이 그냥 군대 가기 싫어서 그런 건가싶어 "정 육사 가기 싫으면 면서기 시험(9급 공개경쟁채용시험의 그 당시 별칭) 봐라. 그것만으로도 된 거다."라며 말렸다.

그래서 선생 앞에서 4시간이나 무릎 꿇고 앉아 원서를 받아내고 뒤늦게 문과 공부를 시작했다. 이 당시의 대입 시험은 문과용 국어 시험에 고문(古文)과 한문 해독이 나오는 등 문이과에 따른 시험 범위의 분별이 극명했는데, 이과에서는 고문 같은 문과용 공부는 안 가르쳐줬기에 교차지원을 하려면 문과 공부를 따로 독학해야 했다.

이과→문과 교차 지원이 수월한 지금과는 달리 이 시절에는 교차 지원 자체가 아주 어려웠다. 그런데 홍판표가 갑자기 마음을 바꾼 게 12월이었고 시험이 1~2월경이었으니 정말 촉박한 시간이었으며, 본인 역시 시험을 치고 나와서도 별로 기대를 안 했는데 진짜로 덜컥 고대에 합격을 해버린 것이었다.꿈에 그리던 고대에 붙었지만 부모님은 당장 낼 등록금(5만 6천 원)이 없다보니 걱정부터 앞섰고, 아버지는 이웃집의 일을 해주는 대가로 7만 원을 빌려와 등록금을 내주고 남은 1만 4천 원은 한 달 하숙비 1만 2천 원, 한 달 생활비 2천 원으로 쓰도록 주었다. 그렇게 1972년 영남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행정학과에 진학했다.

2025년 4월 29일, 21대 대선을 위한 국민의힘 2차 경선에서 탈락한 이후, 언론 인터뷰에서 공식적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4월 30일, 본인을 포함해 부인 이순삼 여사, 두 아들과 함께 국민의힘을 탈당했다. 5월 5일, 지인이 있는 미국에 잠시 다녀오겠다고 밝혔다.

5월 10일, 당에서 날치기로 후보를 통과시킨 사안에 대하여 한국 보수 레밍정당은 소멸되어 없어지고 이준석만 홀로 남았다고 말하여 이준석의 보수계 대안 후보 가능성을 암묵적으로 점치기도 했다. 이후 이준석과 회동한 뒤 하와이로 출국하였다. 다만 김문수가 후보직에 복귀하자 김문수의 선전을 기원했기 때문에 이준석을 공식 지지했던 것은 아니다.

21대 대선에서 이재명이 당선된 후 SNS에서 다시한번 국민의힘을 비판했다. 그는 “내가 30년 몸담았던 그 당을 탈당한 이유는, 대선에서 아무리 몸부림쳐도 승산이 없다고 봤기 때문”,“그 당은 이미 병든 숲처럼 보였다”, “이재명 후보가 집권할 경우, 내란 동조 및 후보 강제 교체 사건 등으로 인해 정당해산 청구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봤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해당 정당이 소멸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김문수를 통한 마지막 몸부림이 무산된 것은 이준석 탓도, 내 탓도 아니다”라며 “당이 사욕(私慾)에 가득 찬 이익집단으로 변질됐기 때문에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한 것”,“세상과 소통하지 않고 노년층과 일부 극우 유튜브에만 의존하는 그런 이익집단은 미래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보수진영의 아웃사이더였다는 건 그걸 두고 하는 말"이라며 "30년 전 정치를 모를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을 따라 '꼬마 민주당'을 갔다면 이런 의리, 도리,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 당에서 오랫동안 가슴앓이는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라고 토로하는 것은 덤이다.

6월 17일, 하와이에서 귀국하였다. 다시 잠잠하다가 7월 28일, 윤석열 탄핵이후 2025년 7월 28일 "2021년 국민의힘 경선 당시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 10만명이 국민의힘의 당원을 가입했다며 조작된 부정경선이라며 이만희에게 들었다며 정상적인 선거라면 국민 여론조사에서 10프로나 앞선 내가 야당의 후보가 되어야 했다며 윤정권은 탄생해선 안될 정권이라고 말했고 본인을 비난하고 윤석열을 비호하는 틀튜브말엔 관심없다"라는 말을 페이스북에 올렸다.

2025년 9월 6일 TV홍카콜라 유튜브에 관세 전쟁에 관한 입장을 재개했다. 은퇴를 선언하는 영상을 게시한 지 근 4개월 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