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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경래 쉐프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대만인 중식 요리사이자 교수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대만 국적의 한중혼혈 화교이며, 세계 중국요리협회 부회장 겸 한국 중식연맹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 하이엔드 중식의 틀을 사실상 완성시켰다는 평가를 받으며, 경력만 50년에 달하는, 한국 중식계에서는 그야말로 전설적인 인물이다. 한국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존경받는 세계적인 중식 대가 중 한 명이다.

프로필
나이 : 1960년 7월 4일 출생. 64세
고향 : 경기도 수원시
국적 : 대만
가족 : 동생 여경옥(1963년생. 중식 셰프), 부인 이수화(1965년생), 큰 아들 여민(1990년생), 막내 아들 여융(1991년생)
소속 : 홍보각(총괄오너쉐프), 경기대학교 평생교육원(주임교수), 세계중국요리협회(비상근 부회장), 이금기유한공사(요리고문)

중국 산동성 출신인 중국인(현 대만) 재한 화교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김영례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쭉 자란 대만 국적의 화교 2.5세이다. 아버지는 6살에 당시 눈 앞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으며, 16살 때 홀로 상경해 스승님인 왕서방을 따라 중식당에 취직해 일을 시작하면서 중식의 길을 걸었다. 당시 받은 돈을 모두 집안에 가져다줬기 때문에, 식당 안에서 숙식을 하면서 일했는데, 요리에 대한 배움의 열망이 강해서, 직접 노트에 손으로 일일이 음식의 모양을 그리고 새벽 세네시가 넘도록 레시피를 적으면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리고 상경 후 3년의 시간이 지나 19살이 되자, 마찬가지로 3살 차이인 동생 여경옥도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더 이상 진학이 어려워지자, 여경래가 직접 자신이 일하던 중식당에 동생을 소개해 데려왔고, 그렇게 형제는 함께 중식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여경래 자신은 대만을 배경으로 한 요리대결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때에는 정작 대만은 10번 내외로만 가 봐서 자주 가는 중국 본토에 비해 잘 모른다고 한다. 이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 대한민국에 뿌리 내린 대만 국적 화교의 대다수는 국공내전으로 공산화 되기 전에 중국 대륙에서 건너와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면서 강제로 대만 국적이 되어버린 경우이다.

여경래 셰프의 아버지도 대다수의 국내 화교 1세대의 출신지인 산둥성 출신 중국인(현 대만)이다.아버지가 화교이며 학창시절에 화교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중국어가 유창하고 화교로서의 자부심이 강하다. 수요미식회에서 중국을 “우리”, “우리나라”라고 여러 번 호칭했고, 영문 이름도 중국어 본명인 Lu Chinglai(뤼징라이)로 표기한다. 다만 세계테마기행에서 중국 여행을 할 때는 반대로 대한민국을 우리나라라고 호칭하기도 했다.

이름도 중국어 본명인 Lu Chinglai(뤼징라이)로 표기한다. 다만 세계테마기행에서 중국 여행을 할 때는 반대로 대한민국을 우리나라라고 호칭하기도 했다. 1970년 중식 레스토랑 동부이촌동 홍보석의 왕춘량, 허인, 쉐라톤 서울 팔래스 강남 호텔 중식 레스토랑 서궁의 조창인 등 당대 최정상 중식 요리사에게 요리를 배웠다. 하지만 왕춘량 셰프가 한국 방문했을 때 같이 촬영한 유튜브에서, 정작 본인은 홍보석에서 일을 안 해봤으며 홍보석 출신의 셰프들과 일을 해서 홍보석파가 된 것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칼의 기술이 최소 100개는 넘는다고 알려져 있는데, 칼판장 출신이어서 그렇다. 대다수 중화요리 장인처럼 커리어를 철가방에서 시작해 칼판 막단에서 실력으로 칼판장까지 올랐으며, 이후 주방장까지 자수성가했다. 다만 칼판장 출신이라 그런지 면을 삶을 때 냄비 주변에 기름을 바르면 넘치지 않은다는 팁을 보고 "이게 가능하면 성을 간다"고 했다가 실제로 가능하자 당황해하면서 박은영 제자에게 박씨로 바꿔야 하냐면서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중식도 측면으로 마늘 다지기나 탕탕 소리를 내는 끊어치는 썰기도 잘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측면 마늘다지기는 튀는 게 너무많고 탕탕소리를 오래들으면 시끄러워서 마늘은 그냥 편으로 썰고 일반 식재료도 밀어 썰기로 조용하게 한다고 한다.

서울 그랜드앰버서더 호텔에서 중식당 홍보각을 오픈하면서 총괄셰프를 맡기도 했다. 또한 동생 여경옥과 함께 중식당 루이의 오너셰프이기도 하다. 2021년 12월, 앰버서더 호텔이 리모델링 후 재개관하면서 홍보각은 재계약없이 폐업하면서 자동적으로 총괄셰프직도 종료되었으나, 강남 노보텔 엠베서더에 홍보각이 다시 생기면서 이곳에서 오너셰프로 근무 중이다. 2005년부터 세계적으로 유명한 중식 소스 회사 이금기의 고문을 맡았다.

동생 여경옥 역시 유명한 중식 셰프로 롯데호텔 중식당 도림의 셰프이자 롯데호텔 상무이사이다. 한창 방송가에서 요리 프로그램이 왕성히 만들어지던 때 SBS Plus '강호대결 중화대반점'을 통해 이미 냉장고를 부탁해를 통해 많이 알려진 이연복과 함께 유방녕, 진생용 셰프와 더불어 중식계의 4대문파라는 타이틀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렸다. 이후 EBS 최고의 요리비결에 출연한 적이 있으며 2018년 5월, 세계테마기행에서 '중국 소수민족 음식기행' 편에 '세계 중국요리 협회 부회장'이라는 자격으로 나레이션 및 출연을 하였다. 이전에도 중국요리기행이라는 주제로 사천요리를 찾아 사천지방여행의 큐레이터로서 참여하신 적이 있다. 중국요리 마니아라면 필견인 영상. 참고로, 한국어나 중국어도 하지만 영어도 할 줄 안다.

또한 중국 정부에서 인정한 100대 중국요리 명인에 선정될 만큼, 오히려 한국보다 중국 요리계에서 더욱 유명한 셰프이다. 수천만명의 중식 요리사 중에서 100명이라는 것이다. 세계중국요리협회 부회장직도 그렇고 커리어가 엄청나다. 다만 본인이 소개하는 세계중국요리협회 설명을 보면 회원 수가 약 1,500만명이고, 이중 중식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약 900만명이고, 그중 명인으로 인정되는 것이 약 500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중국에 본부를 두고 있다보니, 실제 직책명은 부회장이 아니라 부주석이라고 한다. 다만 이후 직책명이 바뀌었는지 회원증에 명시 된것과 다르게 세계 중국요리협회 홈페이지 에선 직함이 부회장으로 되어 있다.

2024년에는 넷플릭스의 화제작 '흑백요리사'에서 백수저 20인 중 1명으로 참가했다. 이금기 요리 대회 심사, 세계중국요리왕국국제대회 심사 등 본인이 가지고 있는 경력이 국내 중식계에서는 최정상급이기에 참가자보다는 오히려 심사위원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도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본인도 처음에는 출연을 고사했으나 숙고 끝에 '다른 중식계 참가자에게 동기부여를 해줄 수 있고, 나를 돌아볼 계기도 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떨어지면 더 재밌겠다.' 라는 생각에 다시 연락하여 출연을 결정했다고 한다.


본인의 제자인 박은영 셰프가 흑수저 80인 중 1명으로 참가하기 때문에 사제 대결이 벌어질 가능성도 생겼는데, 흑수저 80인 중 20명을 뽑는 1라운드에 박은영 셰프가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리자 누구보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 2라운드 1대1 대결에서는 흑수저 요리사 중 중식을 전문으로 하는 3인에게 모두 도전을 받았다. 그 중 '나도 철가방 출신이다"라며 철가방 요리사를 대결 상대로 선택했고, 소꼬리를 주제로 대결했으나 2대0으로 패배해 탈락했다.


원래 정지선 셰프와의 대결에서 박은영 셰프가 먼저 떨어지는 바람에 사제대결이 무산되는 듯 했으나, 박은영 셰프가 백종원의 슈퍼 패스로 추가 합격했고, 오히려 본인이 2라운드에서 떨어지면서 제자를 3라운드에 보낸 모습이 되었다. 충격적인 전개와 별도로 여경래에 대한 시청자의 평은 매우 좋은 편이다. 흑백대결 중 자신의 제자인 박은영을 정지선이 직접 떨어트렸음에도 정지선이 중식계의 탑이 될거라고 추켜세우는 한편, 1대1 대결 선정에서도 본인도 철가방 출신이었다는 훈훈한 이유로 철가방 요리사를 택하였고, 2:0으로 패배하여 자존심이 구겨졌을법한데도 오히려 젊은 사람이 많이 해야 한다며 격려를 해주고 후련하게 퇴장하는 등 최정상급 셰프에 걸맞은 품격을 보여줬다는 평이다.

유튜브 채널에서 대회 참가 후기를 밝힌 바에 의하면, 환갑이 넘은 고령 탓에 촬영이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나가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 것이라며 웃었다. 실제 촬영이 새벽 2시에 할만큼 강행군이어서 너무 힘들었다고 승우아빠나 나폴리 맛피아 등 훨씬 젊은 다른 요리사들이 증언했고 레이먼 킴은 자기 나이대에는 할 수 없는 요리대회라고 생각하고 자문위원으로 참가했다. 게다가 이후에는 하루를 꼬박 새는 미션 등 더욱 체력적으로 힘든 과제들이 예정되어 있었으므로 여경래 부회장이 계속해서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어도 체력적 한계 때문에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그러나 세트장이나 대회 형식이 너무 훌륭했다면서 이러한 대회에 대해 배웠다며 극찬했다. 이런 요리대회를 참가하기보다 주관하는 입장이라 흑백 요리사 대회 운영 및 진행에 큰 관심을 표명하며 다른대회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또한 흑백 요리사가 아시아권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대만에서의 폭발적인 인지도 상승도 얻게 되었다. 여경래 본인이 성원에 감사드릴 정도로 어마어마한 응원 문자와 사랑을 받았다고 했을 정도라고 한다.


최근엔 TV조선 '아빠하고 나하고'에서 여경래가 아들 여민이 오열하는 와중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장면이 공개되어 화제가 되었다. 이날 방송에서 앞서 여경래 셰프와 아버지의 가게에서 부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는 첫째 아들 여민 셰프가 합류해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리고 여경래는 지난 해 '흑백요리사'를 통해 제자들을 향한 끈끈한 애정과 인자한 성품을 드러내며 많은 인기를 얻었는데, 그러나 여민은 아들인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많이 챙기는 데에 서운함을 표출했다. 또한 알려주기만 하면 진짜 열심히 배웠을 것이라며 아빠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여경래의 아들 여민은 "한 번도 여경래 셰프님을 제 스승이라 생각해 본 적 없다"며 날을 세우기도 했다. 이에 대해 여경래는 "아들만 생각하면 속이 뒤집어질 것 같다"며 격한 반응을 보였고, 결국 대화 도중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여경래와 끝내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