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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퉁 근황 나이 프로필 배우 부인 아내 자녀 가족 재혼 이혼
프로필
나이 : 1957년 6월 12일 출생. 68세
고향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본명 : 유순
신체 : 180센치, 90키로
학력 : 부산성북초등학교 (졸업) - 서면중학교 (졸업) - 금성고등학교[2] (졸업) - 울산공과대학 병설 공업전문대학 (전문학사) - 대구예술대학교 (서양화과 / 학사)
가족 : 누나 2명, 남동생 1명, 아들 2명, 딸 3명
종교 : 불교
데뷔 : 1987년 영화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소속 : 좋은 친구들

유퉁은 대한민국의 배우, 방송인으로 인상과 덩치에 어울리는 소위 어깨 배역을 전문적으로 맡는 배우로 조직폭력배, 군인, 경찰, 운동선수, 육체 노동자 등 주로 힘을 쓰는 사람 위주로 연기를 했다.

1957년, 경상남도 부산시 부산진구(現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에서 2남 2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가 7살 때 아버지가 타계하여 홀어머니(김남순, 1927~2003) 밑에서 성장했다. 장남이라 국밥집을 운영한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일을 도와야 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었는데 학창 시절부터 소위 일진으로 유명했다고. 특히 금성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맨날 사고만 치고 다녀 어머니와 누나 2명, 남동생의 속을 많이 썩였다고 한다. 이후 부산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으며 1984년부터는 롯데 자이언츠의 사설 응원단장을 맡았다. 1987년 영화배우가 되면서 전국적으로 인지도를 쌓게 된다.

총 5명의 배우자를 두고 8번의 결혼을 했다고 한다. 2017년 3월 12일 8번째 결혼의 식을 올렸다. 유퉁은 1975년 19살에 첫 결혼을 했다고 한다. 첫 번째 아내와 결혼해서 낳은 두 아들이 벌써 40대 중반을 넘어섰다. 두 살 연상인 첫 아내와 이혼과 재결합을 반복하며 총 3번 결혼하였다.

네 번째 결혼이자 두 번째 아내는 장안의 화제였던 비구니 혜선스님(1972년생)과의 결혼(1995년~1998년)이다. 정확히는 그냥 유퉁이 하는 연극에 오디션 보러 온 여학생이었는데 유퉁이 쌍꺼풀 수술한 것을 두고 한 비난에 산에 들어간 걸 사흘간 머리만 깎은 걸 밤낮으로 설득한 거라고. 그는 "네가 파계를 하고 나한테 오면, 내 너에게 진정한 해탈의 열반을 시전해주마"라고 설교를 했다고 한다. 결혼 이후에는 불교방송 '108가요' 등 여러 프로그램출연했다. 이 당시 사고를 쳐서 아내는 15일간 옥바라지를 하기도 했고, 3년 만에 이혼했다.

다섯 번째 결혼이자 세 번째 아내는 2000년 스무살 연하(1977년생)의 어린 대구 아가씨 전은식과 3년간 동거후에 한 결혼이었는데 온갖 여성지에 도배하고 진정한 사랑을 만났다고 떠벌렸다. 또 전은식 씨의 부모는 유퉁과 결혼하기를 결사반대했는데 아예 한동안 연을 끊기도 하였다.

여섯 번째 결혼이자 네 번째 아내는 몽골인 아내 바상자르갈 씨(1986년생)와 하였다. 도전 지구탐험대에서 만났다. 2005년 바상자르갈이 20살 일 때 임신 후 딸을 낳았다. 그런데 이 시기는 전은식 씨와의 이혼이 마무리 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면서도 성기구 광고를 찍었다. 다만 장모와의 갈등[5]이 원인이 되어 이혼을 했다. 이 때 아내가 몽골로 가면서 잠수를 타버렸고 정상적인 결혼생활이 불가능하다고 판단, 결국 유퉁은 딸의 생활을 위해 재산을 분할하고 이혼을 선택했다.

유퉁의 일곱 번째 결혼이자 다섯 번째 아내인 몽골인 잉크아물땅 뭉크자르갈은 32살 연하이며 장모가 12살 연하이다. 유퉁이 1957년생이고 아내는 1989년생인데, 그에 말에 따르면 “우리처럼 영혼의 사랑을 하면 나이가 안 보인다"고 한다. 결혼식을 올리려 했지만 지참금 문제로 인해 2013년 무산되었다. 뭉크자르갈 씨 사이에는 딸 한 명을 두었다.

한 번의 결혼식 무산 후, 별거했으나 재결합하여 마침내 2017년 3월에 결혼식을 올린다. 8번째 결혼식인 셈. 당시 그의 나이는 만 60세였다. 바상자르갈과의 이혼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은 것은 덤. 2017년 9월 딸과 부인은 딸의 학업 문제로 몽골로 귀국하고 기러기 아빠 신세가 된다.

2019년 11월 뭉크자르갈 씨와 사실혼 관계를 청산했다. 유퉁은 한국에 거주하는데 몽골에 거주하는 아내가 유퉁과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새로운 남편이 생기면서[6] 이혼을 원했다고 한다. 그러자 유퉁은 몽골 전원주택, 아파트를 위자료로 넘겨주고 딸의 학비를 부담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것 때문에 뭉크자르칼이 원래 몽골인 남자친구가 있었고 한국 국적을 원해서 유퉁과 결혼한 것이 아닌가라는 설이 있다.[7] 다만 뭉크자르갈과 요즘도 연락은 하고 지낸다고 한다. 막내딸을 생각하는 마음과 개인적으로도 이혼은 했지만 "아내의 결혼 사실을 모르고 살아 온 내 탓"이라며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더 이상 결혼은 없다고 했다 한다. 이후 2022년에 뭉크자르갈이 또 다른 남자와 재혼한 뒤 아이를 가진 사실을 알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결혼에 대한 가치관을 밝혔는데, 사랑이 식으면 이혼을 한다고 한다. 유퉁 본인은 여러 차례 이혼을 하면서 위자료도 모두 정산하고 깔끔하게 헤어졌다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평생 한 사람과만 사랑을 하고 살면서 이것저것 쌓이는 것이 많기 때문에 결국은 사이가 틀어지기 때문에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이혼을 한다고 한다. 이런 권태기 부부들을 보면서 자신의 성격대로는 못 산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문란한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결혼 생활 중에는 아내만을 사랑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서로 사이가 틀어지고 여러 차례 부부싸움을 하면 "아,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이혼을 결정한다고.

본인은 사랑이 찾아오면 9번째, 10번째 결혼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그러다 최근에는 생각이 바뀌었는지, 다시는 재혼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출처

2020년에 9번째 사랑을 공개했다. 8번째 아내와 별거 도중 만났으며, 이미 기혼자에 딸이 있어 친구 사이로 남기로 했다고 밝혔다. #

막내딸 미미를 몽골에서 한국으로 데리고 왔다. 미미를 한국 집에 데려온 유퉁은 "전 부인의 허락을 받고 공증서류까지 만들어 데려왔다"며 한국어를 가르치며 홈스쿨링을 진행했다. 관광 비자를 받고 들어온 딸의 한국 국적 회복을 위해 출입국사무소에 방문하였다.

2024년 12월 21일 전광훈 목사와 자유통일당이 주도한 '윤석열 대통령 지키기 국민대회'에 참여해 연단에 올라 노래를 불렀다. 이후 딸 미미와 함께 자유통일당에 입당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점거 폭동 당시 서부지법 현장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영상도 본인 채널에 올라와 있었으나 일이 커지자 현재는 영상을 내린 상태.

2025년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 결정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고, 이후로는 집회에 참석하지 않고 있다.

부곡온천 일대에 카페를 열었다. 설운도가 와서 축하 공연을 했다. # 사실 냉면집으로 시작했다가 모종의 이유로 카페로 변경한 것으로 추정된다. 간판을 바꿔 다는 영상을 본인의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했다. # 이후 카페를 또다시 국밥집으로 변경해 문을 열었다. 미미를 다시 몽골로 보냈다고 한다.

무명 시절이었던 1984년에 야구 경기를 관람하러 구덕 야구장에 갔다가 야구 팬들이 부산에는 가장 많은데 연극 보는 관객은 상당히 적기 때문에 연극 관객을 더 끌어들이기 위해서[8] 응원단장을 자처하며 롯데 자이언츠의 사설 응원단장으로 활약하기도 하였는데, 이후 이 사설 응원단장 문화는 KBO 리그의 구단 전속 응원단장이 생기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 시기에 삐에로 분장을 하고 단장 일을 했는데[9] 누가 '뚱땡이'라고 본인을 부르자, "나는 어깨가 좁고 배 나온 사람이 아니고 어깨가 넓으니 퉁퉁하다."라고 했으며 이게 계기가 되어 아예 '유퉁'이라는 예명을 만들어 쓰게 되었다고 한다.

좋지 않은 사생활 외에도 대마초 흡입 혐의로 총 2번 입건된 또다른 흑역사도 있다. 1997년에 차에서 2차례 대마초를 피운 혐의로 자신의 운전사와 함께 입건되었고, 1999년에도 대마초를 흡연한 혐의로 구속됐다. 2013년에도 같은 혐의(대마초)로 다시 구속되었다. 이후 동년 6월 27일에 징역 8월 및 집행유예 2년[10]을 선고받고 3일 만에 풀려났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대마초를 구매해 흡연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반해 1997년 체포 당시 유퉁은 장터에서 대마 씨앗을 구매해, 이를 껍질을 벗긴 뒤 가루로 만들어 담배에 넣어 흡입하는 특이한 방법을 사용했다.# 본인이 직접 신아일보 칼럼에서 밝힌 바로는 1999년에도 비슷한 방법을 사용한 듯하다. 다만 본인의 시각에서 서술한 글이기 때문에 미화가 있을 수밖에 없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당시 유퉁의 큰누나 유은영 씨가[11] "동생에게 대마씨를 고아 먹여 양성 반응이 나온 것 같다"고 인터뷰하기도 했다. # 그러나 언론 보도에 따르면 유퉁은 대마 흡연뿐 아니라 대마를 소지하고 있는 것도 적발됐고, 검찰 조사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다가 법정에 가서야 몸이 안 좋아 약을 먹었는데 대마 성분이 들어 있었다는 진술을 했다고 한다. #

1991년 5월 선배 탤런트 이경호와 MBC 로비에서 주먹다짐을 벌여 3개월간 공연 거부를 당했다.

국밥집 사장님으로 유명하다. 전성기 시절 하루 매출이 1,700만 원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연예계 활동은 가끔 부업 수준으로 나오는 정도로 이 국밥집 장사에 더 집중한다. 1997년부터 장사를 시작했으며 2000년 초중반에 국밥집 운영에 대한 책자를 여럿 썼는데 책자에서 대마초로 인해 잡혀들어간 걸 비난하며 나라가 담배나 술은 넘어가면서 대마초를 막는 걸 엄청 비난하기도 했다. 본점은 제주 제주시에 있으며, 과거에는 체인점도 여럿 냈으나 현재는 대부분 폐업했다.

국밥집 외에도 여러 사업을 벌였는데, 경남 양산에서 안경점을 운영한 적이 있었고[12] 서울 양재동에서 삼겹살집, 김해 삼계면에 곱창집, 창원과 김해에 막창집을 운영했으며 제주에 엉터리공화국(유퉁놀이터)이라는 미술관을 개관한 적도 있었다.[13] 또한 필리핀에 다녀온 이후 리조트 사업을 구상하기도 했는데 이는 실제로 이루어지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20년 발생한 코로나19 이후로 대부분의 사업을 접었다고 한다. 그나마 있던 재산도 잃고 2022년 기준 지인의 도움을 받아 밀양시 모처에서 자신의 그림들을 모아놓은 작은 미술관을 열어 지내고 있으며 당뇨 합병증까지 와서 수척해진 모습이다.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풍채가 상당히 좋았던 점을 생각하면 병세가 심각한 듯.[14]

5번째 이혼을 하고 뉴질랜드에서 크게 사기를 당한 이후 몽골에서 한동안 생활했다고 한다. 죽을 생각을 하면서 몽골로 간 그는 몸에 호랑이와 용 문신을 새겼다. 죽었을 때 문신을 보고 한국 사람으로 생각하고 연락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자세히 보면 양팔을 비롯해 상반신이 모두 문신이고, 이 탓에 유튜브나 방송에서 절대 반팔을 입지 않는다.

강호동과 외모가 비슷한 편으로, 실제로 1박 2일 1기 대도시 특집에서 대구를 방문한 강호동이 이 사람으로 오해받은 적이 있다. 길을 물어보던 강호동이 대구 주민에게 "저 누군지 알겠어요?"하니까,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팔공산에서 국밥집하는 유퉁 씨가 아니냐"고 답해 큰 웃음을 안겨주었다. 이외에 신동도 이 사람으로 오인받은 적이 있다.

조폭으로 오해받게 된 배경을 본인이 밝혔는데, 나이트 행사를 뛰는 중에 건달이 행패를 부리자 마이크로 이 건달을 참교육하다보니 이런 오해를 사게 되었다고 밝혔다. 이 때문인지 사회악인 조폭과 건달이 싫다고 한다. 다만 이휘향의 남편이었던 전직 조직폭력배 두목 김두조와 막역한 사이였고 # 과거 몽골에서 폭력조직을 운영한다는 등의 의혹이 있었다. #

여담으로 유퉁이 몽골 폭력조직에 관련돼 있다는 의혹은 중앙일보가 보도했는데, 해당 기사 이 기사에서는 과거 포항 삼거리파에서 활동하던 폭력배 일부가 활동 중이며 연예인 출신 모 인사는 현지 폭력배를 포섭해 조폭 행세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포항 삼거리파의 두목은 상술한 김두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