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종근 프로필 중장 특전사령관 특수전 사령관 가족 부인 학력 고향
곽종근 프로필 중장 특전사령관 특수전 사령관 가족 부인 학력 고향
프로필
나이 : 1968년 출생. 57세
고향 : 충청남도 금산군
복무 : 대한민국 육군 1991년 ~ 현직
학력 : 충남고등학교 졸업 - 육군사관학교 47기 학사 - 조선대학교 정책대학원 국방정책학 석사
현재 계급 : 육군 중장
주요 보직 : 제51보병사단 167연대장 - 제3야전군사령부 검열과장 - 제3야전군사령부 작전과장 - 한미연합군사령부 지구사 작전처장 - 지상작전사령부 작전처장 - 제17보병사단장 -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 - 합동참모본부 작전기획부장 - 합동참모본부 전작권전환추진단장 - 육군특수전사령관
1987년 충남고등학교를 졸업 후 육군사관학교 47기로 입교하여 1991년 졸업과 함께 육군 보병 소위로 임간했다. 현재 계급은 중장으로 제32대 육군특수전사령관을 역임하였으며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에 가담한 혐의로 직무정지가 되고 수도군단으로 대기조치가 된 후 그러다 1월 20일 보직해임이 결정되었다.
곽종근 중장은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이 기습적으로 선포한 윤석열 정부 비상계엄의 주요 병력 지휘관이었다. 비상계엄 당시 테이저건과 공포탄 사용을 건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에 대해 본인은 당초 테이저건 사용을 금지하려 했고, 참모의 조언에 따라 박안수 계엄사령관에게 이를 재확인하고자 했다고 주장했다. 계엄 해제 직후 김병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항의 방문을 하자 생방송으로 공익제보 내부고발 형식의 인터뷰 및 사과방송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이상현 제1공수특전여단장은 8일 동아일보 통화에서 "사령관님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국회의원들을 끄집어내라. 안 되면 전기라도 끊으라는 말씀을 하시긴 했다"고 말했다.
본인의 인터뷰에 따르면 제1공수특전여단, 제3공수특전여단과 제707특수임무단이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김어준의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통제 임무를 받았으며 예비대로 제9공수특전여단이 외곽에서 댁했다고 한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이 전화로 제707특수임무단 이동 상황을 물어봤으며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국회의사당 의원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말했다.
국회의원 전원을 안에서 끌어내라는 김용현 국방부 장관의 지시에 항명을 각오하고 전 부대 작전 중지를 명령했다고 주장했다. 이후 비상계엄 선포 20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전화를 받았으며 모든 책임은 사령관이 질 것이니 그저 본인의 지시를 따랐을 분인 현장의 작전 대원들에게는 책임이 돌아가지 않게 해달라며 호소를 하였다. 또한 제2차 계엄 명령이 오더라도 사령관 명의로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 부대의 출동을 거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 비상계엄으로 인한 부대 출동의 대가로 2024년 12월 6일 부로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과 같이 직무정지되었다, 이후 수도군단에서 대기조치를 하였다.
12월 9일 군사전문가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이 MBC 라디오 시선집중에 출연해 육군특수전사령부 부대원들로부터 온 제보를 밝혔다. 제보에 의하면 계엄군은 육군특수전사령부의 일부가 아닌 사실상 대다수의 부대였다고 한다. 초동단계에서의 작전 차질로 인해서 실행되지 못해 일부 부대는 되돌아갔을 뿐이지 지금까지 본 계엄군의 출동은 빙산의 일각이었다고 말했다. 김종대 전 의원에 의하면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계엄이 선포되었는데 육군특수전사령부 병력을 대기시킨 건 저녁 7시 직전부터로 보인다며 대기 목적을 말하지 않아서 부대원들은 훈련 상황인 줄 알았다고 말했다. 이어 훈련용 상황 대기는 기상이 나쁘면 안 뜨는데 그날 눈발이 날려서 당연히 출동이 취소되는 줄 알고 특수작전항공단에서 준비를 소홀히 했더니 육군특수전사령관이 이 사실을 알고 재차 대기를 시키면서 엄청 화를 냈다고 전했다.
김종대 전 의원은 또한 제1공수특전여단과 제9공수특전여단이 명령받은 오후 11시보다 48분 늦게 국회에 도착했다며 제3공수특전여단 등 다른 육군특수전 사령부 예하부대도 이미 출동 대기 상태라서 같이 합세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제3공수특전여단 병력은 국회로 추가 출동하다가 계엄이 해제되어 되돌아갔다고 밝혔다. 12월 4일 전북 익산시 금마면이나 전남 담양군에 있는 제7공수특전여단, 제11공수특전여단까지 서울로 올라는 것으로 출동 계획이 세워져있었다며 계엄이 선포되기 전날인 12월 2일 모든 여단장이 경기도 이천시 육군특수전사량부에 모였다고 말했다.
12월 6일 국방부에 의해 직무정지가 내려졌으며 9일 오후 8시에는 국가수사본부에 의해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12월 10일 그동안 본인의 해명 중에 일부가 거짓이었음을 밝혔는데 곽종근 사령관은 국회 국방위원회 긴급 현안질의에 출석해 4일 0시 30분부터 0시 40분 사이 윤석열이 곽종근에 두 차례 전화하였다고 밝혔다. 또한 윤석열이 전기를 끊고 공포탄을 발사하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곽종근은 실행을 하지 않았고, 이후 윤석열의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12월 15일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의해 구속영장이 청구되었꼬, 14일에는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에 대한 영장이 청구되었으며 이진우 수방사령관도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 16일에는 결국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구속조치 되었다.
2025년 2월 6일 헌법재판소에 출석하여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의 의원들을 끄집어내라고 했지만 군인들이 진입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국회의원으로 이해하였다고 진술하였다. 그리고 공포탄과 테이저건을 가지고 시민들을 제압하려는 것은 본인의 생각이었고 전기 차단 역시 본인의 생각이었다고 진술했다. 다만 이날 정형식 재판관과 김형두 재판관은 곽종근의 일부 진술이 명확하지 않았던 점을 거론하며 신빙성 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했다. 이에 윤석열 측도 기세좋게 곽종근의 주장에 신빙성을 문제시하는 방향으로 나갔으나 이후 곽종근이 계엄 당일 윤석열과의 통화에서 마이크 스피커를 켜놔서 대원들이 모든 대화를 들었다고 밝혔다.
곽종근은 윤석열에 대해 크게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특전사와 수방사를 비롯한 대한민국 국군의 여러 부대들이 윤석열 개인에게 완전히 이용만 당하고 팽 당했다면서 분개하였고 옥중노트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기록했다. 결국 곽종근의 행보 자체로 윤석열의 내란죄 혐의가 완벽하게 입증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