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박병호 나이 부인 아내 자녀 재혼 프로필 종교 근황 드라마 출연
탤런트 박병호 나이 부인 아내 자녀 재혼 프로필 종교 근황 드라마 출연
배우 겸 탤런트 박병호는 스님 전문배우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는 KBS 1기 공채 탤런트 출신으로 1967년도에 TBC 드라마 《원효대사》를 시작으로 매년 스님 역할에 출연하여 50여 편의 작품에 스님 역할로 출연했다. 1969년 배우 최무룡과 함께 영화 제작 사업을 시작했지만 빚을 지어 빚을 갚기 위해 거리 외판원부터 밤무대 가수까지 악착같이 돈을 벌어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2008년 경상남도 남해군으로 귀농하였고, 2012년 명예 남해군수에 위촉되었다.
프로필
나이 : 1937년 7월 28일 출생. 87세
고향 : 경기도 경성부 신당정(현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가족 : 부인 박종숙 (재혼), 자녀 2남 2녀(3명은 전부인 정혜선과 사이에 소생)
학력 : 서울청구국민학교 졸업 - 한양중학교 졸업 - 한양공업고등학교 건축 졸업 -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 학사
데뷔 : 1962년 공채 탤런트 KBS 1기
종교 : 불교
1937년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서울청구국민학교를 비롯해 한양중학교, 한양공업고등학교,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건축학과까지 다니며 연극 무대에서 연기했는데, 1960년에는 극단 '신협'이 상연한 <안네 프랑크의 일기>에도 출연했다. 대학 시절에는 학도호국단 3기 총회장도 맡았다.
1962년 서울텔리비전방송국 KBS 1기 공채 탤런트로 뽑혀 드라마 <그날이 오면>을 통해 본격 데뷔했다. 초기에는 KBS에서 활동하다 도중에 동양TV(훗날의 TBC)로 옮겨 숱한 드라마에서 주연과 조연을 두루 맡았고, 1967년에 수요연속극 <원효대사>를 시초로 스님 역을 맡기 시작했다.
동료 원로배우들이 증언할때마다 잘생긴 외모라고 언급하던 눈이 부리부리하고 코가 오똑한 미남이었으나 비교적 젊은 나이에 탈모가 와서 스님 역에 어울리는 외모가 되었는데, 1960년대 말부터 2010년대까지 안방극장에서 스님 역을 도맡아 했던 배우였다. 같은 해 영화 <흙>과 <역마>에서 조연을 각각 맡으며 은막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공주님의 첫사랑(1967)>, <그리움은 가슴마다(1967)>, <내 목숨 다하도록(1968)> 등지의 멜로드라마와 사극 영화에 나오다가 1968년부터 영화 제작에도 손을 대며 검객물이자 사극인 <랑> 등 몇 편의 영화를 만들다가 흥행 성적이 안 좋아 망했다. 또한 불교 신자로서 <파계(1974)> 등지의 불교 영화에서 인상깊은 연기를 선보였다.
제일 유명한 배역은 용의 눈물에서 무학대사 역이며, 전설의 고향의 지나가던 스님으로도 자주 출연했다. 그보다 앞서 8.15 광복 전후 정국을 다룬 KBS 대하드라마 새벽(1985년) 및 여명의 그날(1990년), 다큐멘터리극장(1994년)에서는 여운형 역을 맡기도 했다.
용의 눈물 이후 태조 왕건에서 형미 대사, 천둥소리에서 서산대사, 무인시대에서 조영인을 연기했으며, 2009년 KBS 천추태후에서 진관 대사 역을 맡았다. 2014년 정도전 드라마에서 용의 눈물에 이어 다시 무학대사로 출연하여 오랜만에 TV에 모습을 보였다. 2015년 징비록에서는 사명대사 역으로 출연해 1995년 서궁에서 사명대사 역을 맡은 후 다시 한번 같은 인물을 맡았다.
1960~1970년대 TBC의 특별수사반, 다이얼 330, 박주임, 형사 등의 수사 드라마에서 주로 반장 역할을 도맡아 하면서 MBC에 최불암이 있다면 TBC는 박병호라고 할 정도로 수사반장 역할에 최적화된 연기자이기도 했다. 2000년대 중후반 이후에는 가끔 TV 드라마에 나오는 정도이고, 2007년부터는 부인과 함께 남해군 시골에 정착해 거주 중이며, 2012년에는 명예 남해군수로 위촉되었다.
그 외에 시트콤에 출연하기도 하였는데, SB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67회 ~ 164회 사이에 동작소방서장으로 출연했다. 그리고 2022년 영화 '리멤버'에 일본인 토조 히사시 역할로 출연해서, 액션 씬을 소화하며 노익장을 과시했다.
1963년 KBS 공채 동기인 정혜선(본명 정영자)과 결혼했으나 1975년에 전술한 사업 실패로 이혼했다. 영화제작에 실패하고 몇 년간 거리 외판원부터 밤무대 가수까지 하며 악착같이 돈을 번 끝에 갚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전처인 정혜선 역시 이혼하고도 오랫동안 전 남편의 빚을 갚는 고생을 했다. 이후 박종숙씨와 재혼했다.
배우로서의 내공이겠지만 담력이 대단한데, 용의 눈물 촬영 당시 김무생 옹이 휘두른 철퇴에 박살난 그릇의 파편이 날아와 얼굴을 직격했는데도 눈하나 꿈쩍하지 않았고 그 장면은 그대로 방영되었다. 뺨에 맞았기에 망정이지 눈에 맞았으면 실명할 수도 있었는데도 담대하게 눈을 부릅뜬 명연기를 선보였다.
배우 생활 동안 1976년에 한국텔레비전방송연기자협회(현 한국방송연기자협회) 이사를 맡기도 했으며, 한국연예인새마음봉사실 실장(1978~1980), 한국바른말연구원 연구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으며, 1987년 제13대 대통령 선거 때 신민주공화당에 입당하여 김종필 후보의 선거대책본부 지도위원 겸 전국유세위원을 맡았다. 1988년 제13대 총선 때 성동구 갑 지구당 위원장을 맡으며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자유당 공천에서 떨어진 뒤 통일국민당으로 옮겨 성동구 갑 지구당 위원장을 맡으며 출마했다가 또 낙선됐다. 한편 더불어민주당 소속 4선 국회의원인 우상호의 외삼촌이며, 그리고 조카사위가 배우 안성기다.
2019년 10월 16일 방송된 ‘마이웨이’에 출연한 배우 박병호는 사업실패, 선거 낙선 등 다사다난했던 인생사를 공개했다. 이어 박병호는 인생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가족을 꼽았다. 박병호 박종숙 부부는 현재 남해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며 생활 중이다.
박병호는 “옛날에는 쫓기면서 살았는데 요즘엔 쫓아가면서 사는 중이다”고 근황을 밝혔다. 박병호는 드라마 ‘특별 수사반’ 출연 당시를 회상했다. 박병호는 KBS 공채 1기 탤런트로 데뷔했다. 박병호는 “당시 내가 수사반장 역할을 맡았고, 이순재 씨가 수사관 역할이었다”고 설명해 좌중의 놀라움을 자아냈다. 박병호는 “스님 역할을 하면 마음이 편안했다. 그래서 많이 맡았다. 다른 역할보다 부담이 없더라”라고 스님 연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박병호는 가수 현미와의 남다른 인연을 공개했다. 박병호와 현미는 고(故) 이봉조 덕분에 친분을 이어가게 됐다고 밝혔다. 현미는 “TBC 때부터 박병호 씨와 함께 활동했다”고 말했다. 박병호는 “고 이봉조 형님과 대학 선후배다”고 설명했다. 현미는 “나는 이봉조 씨와의 생활을 후회하지 않는다. 무척 가정적인 사람이었다”고 떠올렸다.
박병호는 사업실패담을 고백했다. 박병호는 “부채가 70년대에 4억이었다”고 털어놨다. 현재 몇 백억에 달하는 빚이었다. 박병호는 “영화 제작을 3, 4편 정도 했다. 제작비 지출이 다른 영화보다 1.5배 정도 더 들어갔다. 채무자들에게 쫓겼다. 아내가 많이 고생했다”고 죄책감을 드러냈다. 박병호는 “연이은 사업 실패 때문에 도망가서 죽으려고 했다. 소주 30병을 마셨다. 도망갔을 때 처음 어머니 생각이 났다. 그때 비로소 눈물이 났다”고 회상해 시청자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박병호는 후배 배우 임혁과 만나 정치생활을 회상했다. 임혁은 “박병호 형님이 선거 후보로 나오셨을 때 선거유세 지원까지 나갔다”고 말했다. 박병호는 “당시 거의 당선 확정이었다. 그런데 표심이 하루아침에 바뀌더라”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박병호는 고(故) 김종필 총리와의 남다른 인연에 대해 고백했다. 박병호는 “과거 인기가 많았을 때 김종필 총리가 방송국에 오셨다. 그때 나와 만났다. 이후 86, 87년도에 김종필 총리가 한국에 돌아오셨을 때 우리 집에서 경호팀이 구성됐다. 그 날 때문에 미결수가 됐다. ‘정치에 관여하지 말 것’이라는 각서를 쓰고 감금됐던 독방에서 나올 수 있었다”고 털어놔 시청자에게 놀라움을 안겼다. 박병호는 “가족들이 걱정돼 정치를 그만뒀다”고 덧붙였다.
박병호는 현재 40살 넘어 얻은 늦둥이 아들, 손주들 덕분에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박병호 막내아들 박경준 씨는 “막내라서 귀여움만 받으며 컸다. 초등학생일 때도 아버지가 엉덩이를 두드려 주셨다”고 남다른 아버지 박병호의 자식사랑을 자랑했다. 사업 및 정치인생 실패를 극복한 후 여유로운 노년을 보내고 있는 박병호다. 박병호가 위기를 겪을 때마다 일어설 수 있었던 것은 가족 덕분이었다. 박병호는 “아내는 내가 필요할 때 옆에 있는 사람”이라고 고마움을 표했다. 삶의 역경을 이겨내 하나가 된 박병호-박종숙 부부의 끈끈한 금슬이 돋보였다.
출연 드라마
2019년 SBS 시크릿 부티크 - 운산스님 역
2017년 MBC 돈꽃 - 스님 역
2015년 MBC 밤을 걷는 선비
2015년 KBS 징비록 - 사명대사 역
2014년 KBS 정도전 - 무학대사 역
2009년 KBS 천추태후 - 진관 역
2008년 SBS 떼루아 - 강태민의 할아버지, 강 회장 역
2003년 MBC 회전목마 - 류 회장 역
2003년 KBS 무인시대 - 조영인 역
2001년 SBS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 소방서장 역
2001년 SBS 여인천하 - 김전 역
2000년 KBS 천둥소리 - 서산대사 역
2000년 KBS 태조 왕건 - 형미 역
1998년 MBC 애드버킷 - 서울지검 검사장 역
1996년 KBS 용의 눈물 - 무학대사 역
1995년 KBS 찬란한 여명 - 박규수 역
1995년 KBS 서궁 - 사명대사 역
1994년 SBS 작별 - 시내 부(서초동 할아버지) 역 - 박사
1994년 KBS 다큐멘터리극장 - 여운형 역
1994년 KBS 한명회 - 양녕대군 역
1993년 KBS 먼동 - 김효순 대감 역
1990년 KBS 여명의 그날 - 여운형 역
1990년 KBS 바람소리 - 무공스님 역
1989년 MBC 테러리스트
1989년 KBS 등
1989년 KBS 지포리에서 생긴 일
1988년 KBS 하늘아 하늘아
1987년 KBS 토지 - 우관스님 역
1987년 KBS 사랑의 화원
1986년 KBS 뜨거운 강
1986년 KBS 열반제
1985년 KBS 방랑자
1985년 KBS 새벽 - 여운형 역
1984년 KBS 객사
1984년 KBS 비객
1984년 KBS 독립문 - 안태훈 역
1983년 KBS 전우 - 사단장 역
1982년 KBS 행복의 계단
1982년 KBS 지금 평양에선
1982년 KBS 그 여름의 이틀 - 아베 노부유키 역
1982년 KBS 풍운 - 유대치 역
1982년 KBS 서울의 지붕밑
1981년 KBS 지금은 사랑할 때
1981년 KBS 뚝쇠 장군
1981년 KBS 바윗골 사람들
1980년 TBC 무지개 가족
1979년 TBC 형사
1979년 TBC 소년 홍길동 - 허노인 역
1978년 TBC 내일도 푸른 하늘 - 저승사자 역
1978년 TBC 왕짱구
1978년 TBC 하얀날개
1978년 TBC 칸나의뜰
1977년 TBC 부부
1977년 TBC 청실홍실 - 김회장 역
1977년 TBC 꺼꾸리와 장다리 - 꺼꾸리의 할아버지 역
1975년 TBC 임금님의 첫사랑 - 양순의 큰아버지 역
1975년 TBC 셋방살이 - 주동재 역
1975년 TBC 푸른계절
1975년 TBC 두남편
1974년 TBC 총리대신 김홍집
1974년 TBC 인목대비 - 임해군 역
1974년 TBC 박주임
1974년 TBC 환상
1974년 TBC 윤지경
1973년 TBC 탈출
1973년 TBC 연화 - 연파스님 역
1973년 TBC 왜 왔던가
1973년 TBC 특명 7호
1972년 TBC 사모곡
1972년 TBC 대령집 아이들
1972년 TBC 극성부인
1971년 TBC 53세의 외출
1971년 TBC 카인의 수첩
1971년 TBC 상감마마 미워요
1971년 TBC 여인
1971년 TBC 우리누나 최고
1970년 TBC 비둘기 가족
1970년 TBC 딸
1967년 TBC 원효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