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조용필 나이 프로필 자녀 부인 아내 가족 노래모음 근황 고향 데뷔
가수 조용필 나이 프로필 자녀 부인 아내 가족 노래모음 근황 고향 데뷔
조용필은 역대 대한민국의 가왕, 또는 국민가수로 불리며 국내 대중 음악을 크게 발전시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데뷔 후 55년이 넘는 세월 동안에 꾸준하게 현역 가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현재 70대가 넘어가고 있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매년 전국투어 콘서트를 진행하고 있다.
조용필 프로필
나이 : 1950년 3월 21일 출생. 74세
고향 : 경기도 화성군 송산면 쌍정리(현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 쌍정리)
가족 : 아버지 조경구, 어머니 김남숙, 3남 4녀 중 3남 및 여섯째
부인 : 박지숙(1984년 결혼, 1988년 이혼), 안진현(1994년 결혼, 2003년 사별)
학력 : 송산초등학교 졸업 - 송산중학교 전학 - 경동중학교 졸업 - 경동고등학교 졸업
데뷔 : 1969년 미8군 무대 '화이브 핑거스'
신체 : 165센치, 56키로, O형
종교 : 불교
군대 : 대한민국 육군 일병 소집해제(1973년 경기도 화성군 해안경비병 복무)
경기도 화성군에서 염전업을 하던 부유한 집안의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학창시절부터 음악에 푹 빠져 지냈고, 결국 고등학교 3학년 대 음악을 반대하던 아버지와 심하게 갈등을 겪어 가출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후 1968년 미7군 기타리스트 겸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했고, 미8군이라 하면 지금의 나이트클럽 밤무대와 같은 것을 연상하지만 기실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모든 시작이 이루어진 곳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1960년부터 1980년대의 모든 대중음악 활동의 장 이었던 것.
조용필은 1984년 3선 국회의원이던 박찬의 딸 박지숙과 결혼했지만 4년 만에 성격 차이로 인해서 합의 이혼을 했다. 10년 뒤 1994년 미국에서 로비스트로 활동한 안진현과 만나 재혼을 하였고, 결혼 이후에는 남편 조용필의 뒤에서 내조에만 전념하였다. 그러던 2003년 1월 5일 아내 안진현은 5년여 동안 앓아오던 심장병으로 인해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조용필은 예상하지 못했던 부인 안진현과의 사별에 큰 충격을 받았고, 한동안은 활동을 중단한채 칩거하면서 힘든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조용필은 두번의 결혼 생활동안 자녀는 단 하나도 소생하지 않았다.
컨트리 웨스턴 그룹 '애트킨즈'에서 활동하다가 곧 '파이브핑거스' 그룹을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주로 미8군 무대에 올랐고 그러다가 1971년 5월 3인조 록 그룹 '김트리오'를 결성하여 활동하기 시작했다. 김트리오는 드러머이자 타악이 연주자였던 김대환과 사랑과 평화의 최이철하고 셋이서 결성이 되었고, 1972년 '드럼 드럼 드럼 앰프키타 고고'라는 연주 음반도 발매하였다. 이 당시 'Lead Me On' 곡이 선데이 서울컵 팝그룹 콘테스트 최우수상을 수상하였고 이후 여학생을 위한 뮤지컬 사랑의 일기 라는 음반에 '님이여', '사랑의 자장가', '케사라', '히얀 모래의 꿈'을 녹음하게 되는데 이게 사실상 조용필의 노래가 들어간 첫 음반이다. 이때 KBS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 '돌아오지 않는 강'도 녹음하였으며 직후 1972년 스테레오 히트 앨범 제1집을 발매하면서 본격적으로 음반을 내는 가수로 활동하였다.
1972년에는 '그룹 25시'를 결성해 활동하기 시작했고, 이듬해 1973년에는 방위병으로 소집되어 해안경비병으로 군복무를 하였다. 군복무기간중에도 최근 후 음악 활동을 계속하면서 1974년에는 '조용필과 그림자'라는 그룹을 결성하였다. 1975년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발표하면서 이 곡과 함께 전설이 시작되었으며 당시 재일교포 고국 방문과 맞물려 발표한 이 노래는 부산에서 인기가 시작되더니 전국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조용필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가 되었고, 돌아와요 부산항에 노래는 지금도 프로야구팀인 롯데 자이언츠의 1순위 응원가이기도 하다.
1979년에는 지금의 그룹 '위대한 탄생'을 결성하였는데 1년 뒤인 1980년에 1집 앨범 '창밖의 여자'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 앨범은 100만장이라는 판매고를 기록하였고, 이후 내놓는 앨범들마다 히트를 기록하는 등 1980년대 최고의 스타가수, 히트가수로 군림하였다.
그동안 조용필의 대표곡들을 꼽으라면 의미가 없을 정도로 너무 많으며 그냥 그가 발표한 모든 노래들이 전부 히티곡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대중들에게 가장 크게 알려진 히트곡 리스트를 만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창밖의 여자, 돌아와요 부산항에, 잊혀진 사랑, 단발머리, 한오백년, 대전블루스, 축복(촛불), 간양록, 외로워 마세요, 잊기로 했네, 미워 미워 미워, 일편단심 민들레야, 강원도 아리랑, 님이여, 여와 남, 물망초, 고추잠자리, 내 이름은 구름이여, 못찾겠다 꾀꼬리, 난 아니야, 자존심, 비련, 한강, 나는 너 좋아, 친구여, 황진이, 그대 눈물이 마를 때, 눈물의 파티, 정의 마음, 어제 오늘 그리고, 내가 어렸을 적엔, 그대여, 들꽃, 사랑하기 때문에, 미지의 세계, 여행을 떠나요, 허공, 킬리만자로의 표범, 그 겨울의 찻집, 상처, 마도요, 그대 발길 머무는 곳에, 청춘시대, 서울 서울 서울, 모나리자, Q, 추억속의 재회, 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꿈, 장미꽃 불을 켜요, 슬픈 베아트리체, 그리움의 불꽃, 바람의 노래, 그대를 사랑해, 기다리는 아픔, 태양의 눈, 꿈의 아리랑, 바운스, Hello, 걷고 싶다, 찰나, 세렝게티처럼, 라, 그래도 돼, Feeling of you, Timing>
한번은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공연이 히트곡으로만 구성되었는데도 양일 겹치는 노래없이 이틀이나 진행되었다. 실제로 본인도 콘서트 멘션 중 발표한 노래가 너무 많아서 다 하려면 며칠을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멘트도 없이 본인 노래들로만 앵콜까지 꽉꽉 채워 불러도 시간이 모자라기 때문에 여타 가수들의 콘서트처럼 다른 가수들을 게스트로 불러 무대를 대우는 경우도 거의 없다. 콘서트가 끝난 뒤 빠져나가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면 "xx 노래가 듣고 싶었는데"하는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데, 멘션도 거의 없이 노래로 모든 공연을 꾸며서 타 가수들에 비해 콘서트에서 부르는 곡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음에도 이러한 관객 반응이 나오는 것을 보아서 히트곡이 얼마나 많은이 알 수가 있다.
대한민국 대중음악 역사상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며 후배 가수들의 꿈 같은 존재로서 지금은 고인이 된 마왕 신해철이 롤모델로 추앙을 했던 인물 중 하나였다. 과거 '김혜수의 플러스 유'라는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당시 "마왕으로 불리던 후배 신해철을 어떻게 생각하시냐"라는 질문에 "귀여운 후배"라고 언급했다. 그리고 신해철의 라디오 '고스트스테이션'에서 조용필의 히트곡을 직접 리마스터하여 특집으로 특 적이 있었는데 혹시라도 혼날까봐 조용필이 잠든 것이 확실한 공연날의 밤을 골라 방송하기도했다. 이 외에 이승철, 이은미 등 기라성 같은 대한민국의 가수들 조차 조용필 앞에서는 고개를 못든다고 한다. 하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후배들의 태도가 조용필이 무서운 선배가 아니라 존경심에서 나오는 모습들이라는 것이다.
조용필 노래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