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의원 프로필 기획예산처장관 나이 남편 김영세 교수 자녀 가족 학력

프로필
나이 : 1964년 6월 15일 출생. 61세
고향 :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
거주지 : 서울특별시 서초구 반포동 래미안 원펜타스
본관 : 전주 이씨
현직 : 기획예산처장관 후보자, 사단법인 한국여성의정 상임공동대표, 대한민국헌정회 부회장, 대한민국헌정회 이사, 상생과통일 포럼 자문위원
가족 : 배우자 김영세, 장남 김성환, 차남, 삼남
학력 : 산호국민학교 졸업 - 마산여자중학교 졸업 - 마산제일여자고등학교 졸업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 학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UCLA 대학원 경제학 박사
종교 : 개신교
소속 정당 : 무소속
의원 대수 : 17, 18, 20 (3선)

약력
미국 랜드연구소 연구위원
영국 레스터 대학교 경제학과 조교수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
제17대 국회의원 (서울 서초구 갑 / 한나라당)
한나라당 원내부대표
국제의원연맹(IPU) 이사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한나라당 제3정책조정위원장
한나라당 제4정책조정위원장
한나라당 사무부총장
제18대 국회의원 (서울 서초구 갑 / 한나라당)
새누리당 최고위원
사단법인 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회장
연세대학교 특임교수
제20대 국회의원 (서울 서초구 갑 / 새누리당)
바른정당 최고위원
제2대 바른정당 당대표
바른정책연구소 이사장
제20대 국회 후반기 4차 산업혁명 특별위원회 위원장
제20대 국회 후반기 정보위원회 위원장
바른미래당 서울특별시당 위원장
미래통합당 동대문구 을 당협위원장
국민의힘 동대문구 을 당협위원장
대한민국헌정회 부회장
대한민국헌정회 이사
국민의힘 서울특별시당 자문위원장
국민의힘 중구·성동구 을 당협위원장
기획예산처장관 후보자

1964년 6월 15일,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부전동에서 1남 4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유년기를 부친의 고향이자 본가인 충청북도 제천시에서 보냈다. 아버지의 직업이 직종 특성상 전근이 잦을 수밖에 없는 직업인 직업 군인이라 임지를 따라다니기 힘들었기 때문에 취학 이후에는 외가가 있는 마산시에서 학교를 다녔다. 학생 시절 추리소설 매니아였으며 고고학에도 관심이 컸다고 한다.

이때 마산제일여자고등학교 재학 당시 대입 시험 성적이 전국 최상위권으로 나오자 학교에서는 서울대학교 법대를 강력히 권유했고, 이건 사실상 서울법대 아니면 지원 서류 도장 안 찍어준다 식의 입장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집안에서도 법대 진학 반대가 심했고, 본인도 본인의 관심 분야가 아닌 걸 학교에서 강요하는 것도 싫었고 별 흥미와 관심이 없었는지라 대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에 가는 걸로 학교 측과 합의를 봤다고 한다. 물론 본인은 사회과학대학(경제학과)이 뭐하는 데였는지도 모르고 갔다고 한다.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UCLA 대학원 경제학 박사를 졸업하였다. 박사는 계량경제학을 전공해서 학위를 받았다. 유학은 당시 이혜훈의 은사였던 한승수 전 국무총리가 권유했고, 유학 이후 연구소 같은 곳에서 일해보라며 당시 여성 경제학 박사 1호였던 김명숙 KDI 연구위원을 소개해 줬다고 한다.

UCLA 박사학위 수여식에서 남편인 김영세 교수 및 두 아들과 함께. 참고로 둘째 임신 당시 산부인과 병실에 누워서 모니터를 머리맡에 가져다 놓고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했다고 한다.

박사학위 취득 후 김영세 교수는 런던대 교수로 부임했고, 이혜훈 박사도 영국 레스터대 교수로 부임했지만 주말부부가 되었고, 부부는 육아 문제 등 여러 문제들을 고려해 김영세 교수는 연세대학교로, 이혜훈 교수는 KDI로 옮기며 부부 모두 국내로 돌아오게 되었다.

KDI 연구위원을 역임하면서 경제학자로 활동하였다. KDI 연구위원 시절 사수가 유승민이었다. 그래서인지 유승민 의원이 유력한 정치인으로 떠오르고, 이혜훈 의원도 비박계로 전향한 뒤부터는 대표적인 친유계 인사로 분류되기도 했었다.

KDI 시절 당시 셋째를 임신 중이었는데, 육아와 출산 문제로 알게 모르게 차별과 멸시를 당하게 되자 당시 사수였던 유승민 박사가 남자들 참 못됐다. 니들이 애들 키워보기나 했냐?라고 적극적으로 부사수인 이혜훈 박사를 변호하기도 하였다.

총 3번의 선거에서 시아버지인 김태호 전 내무부장관(의원)의 선거를 도우며 정치를 배웠으며, 당시 김태호 전 의원은 주변의 지인들에게 '(아들 대신) 며느리가 정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혜훈 박사는 김태호 전 의원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사무실 전화대기, 차 내오기 같은 잡일부터 시작해 방송원고 작성, 선거기획, 전략 등을 담당하였고, 미국이나 영국에 있을 때에도 휴가를 써서 선거를 도왔다고 한다. 대정부 질문이나 국정감사도 며느리와 같이 의견을 나눴으니 며느리에 대한 신뢰가 컸던 것이다.

이러한 활동과 함께 4선 의원, 내무부장관을 역임한 울산의 맹주였던 김태호 전 의원 덕분에 이혜훈 박사는 정치권에서 울산 며느리라는 별칭으로 통했고 실제로 울산 지역 선거에 지원 유세를 나가기도 했다.

그러던 중 김태호 의원이 국회의원 임기 중 사망하며 재보궐선거가 생기게 된다. 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가 이혜훈 의원의 소문을 듣고 만나서 특보 자리를 제안했으나, 재보궐선거를 준비하던 이혜훈 박사는 정중히 거절했다. 당시 이회창 총재가 이혜훈 의원을 만나보고는 주변에 '똑똑한 여성'이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그러나 재보선 심사에서 시아버지의 재보선에 며느리가 나간다는 이유로 탈락하자, 보건복지특보 제의를 수락하고 이회창 캠프에서 뛰게 된다.

이후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여성기획공천 1호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초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선거 슬로건은 대한민국 히든카드 이혜훈였다. 이후 한나라당에서 여성 초선으로서는 굉장히 드물게 재선 이상급이 맡는 제3정책조정위원장(예산, 재경), 제4정책조정위원장(건설, 교통, 산업, 자원)을 맡아 당의 정책을 담당하였으며, 여의도연구소 부소장 등을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치러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선출 전당대회에서 친박계로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였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지역구(서초구 갑)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종합부동산세 관련하여 오히려 부동산만 올린다며 부정적이었는데,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법안을 제출해 18대 국회 제1호법안(종부세법 개정안)의 타이틀을 얻기도 했다. 심지어 2008년 헌법재판소에서 종부세와 관련하여 일부 위헌 판결을 받아 이혜훈 의원은 일약 강남3구 주민들의 영웅으로 떠오르기도 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새누리당 공천을 받지 못 했다. 심지어 이 당시 서초구 갑 국회의원 공천을 신청한 사람은 이혜훈 혼자 밖에 없었음에도 김회선 전 국가정보원장 2차장이 공천을 받았다. 그러나 공천 결과에 승복하고 백의종군하여 2012년 총선에서 당시 새누리당 종합상황실장을 맡아 단독 과반인 152석을 얻는데에 일조하였다.

이후 전당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어 2014년까지 역임하였고, 정계에서는 이혜훈 최고위원을 '새누리당의 맏며느리'로 지칭하기도 했다. 2013년 보건복지부장관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으나 결국 문형표 장관으로 결정되었다.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로 친박계에서 벗어나 비박계 인사로 돌아섰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정몽준 의원, 김황식 전 국무총리와 새누리당의 서울특별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하였으나 정몽준에게 패하였다.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울산 남구 을에 출마를 선언했다. 하지만 박맹우 전 울산광역시장이 공천을 받았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후보 경선 상대였던 친박 출신인 조윤선을 단 13표 차이로 제치고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아 서울특별시 서초구 갑에 다시 출마하여, 54,117표(57.0%)를 얻어 당선되었다. 2020년 1월 3일 바른미래당을 탈당하고 새로운보수당에 참여하였다.

2020년 2월 21일 미래통합당 공천 과정에서 컷오프되었다. 서초구 갑이라는 보수정당 최고의 지역구에서 4선을 노린다는 것이라 충분히 공관위의 결정에 이해가 간다는 시각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서초구 갑에 이혜훈 의원만한 사람이 없었다는 평도 있었다.
2020년 3월 동대문구 을에 추가 공천을 신청했고 3월 16일 동대문구 을 경선에 승리해서 공천을 확정지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장경태 후보에게 밀려 2위를 기록하며 낙선했다. 사실 동대문구 을에 공천되고 나서 장경태에 비해 준비할 기간도 길지 않았고 민병두와 장경태의 단일화, 2020년 차명진 세월호 유가족 망언 파동과 각종 막말 사태로 불리해진 면도 없잖지 않았다. 게다가 동대문구 을 자체도 홍준표가 당선된 당시와 달리 경합지로 정치 지형이 변화한 것도 이혜훈에게 불리한 이유이기도 했다.
2021년 서울특별시장 재보궐선거 출마 선언을 했다. 공약으로는 한강변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신혼부부와 육아 부부에게 특화된 지분적립형 주택단지 공급, 강북·강서 4개 권역에 80층 규모 직장·주거 복합단지 건설, 19~30세 청년들의 지하철 요금 무료 등을 내세우며 "집 걱정부터 덜어드리는 '경제시장'이 되겠다"고 밝혔다.
2025년 12월 28일, 이재명 정부의 초대 기획예산처장관으로 지명되었다. 이혜훈은 지명 당시 현직 국민의힘 중구·성동구 을 당협위원장이었는데, 이는 헌정 사상 최초로 연정에 속하지 않은 타 정당에 소속된 인사를 장관으로 지명한 사례이다. 이혜훈은 야당에서 상당한 체급을 가지고, 더 나아가 반-이재명 행보를 보여온 점을 생각했을 때 상당히 파격적이다. 이혜훈은 지명 이후 작성한 反이재명 정부 게시물뿐만 아니라 국민의힘에서 활동했던 게시물까지 전부 지워 개인 SNS에 게시물이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이혜훈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추천한 인사가 구체적으로 누구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렸다. 정규재, 김종인 등의 이름이 언급되었으나 두 사람은 이혜훈과 연관이 없다며 이를 부인하였다. 청와대 측에서는 이를 함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