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최수종 프로필 나이 아들 누나 학력 딸 키 가족 한국인의밥상 리즈 근황

by 노란 돌고래 2026. 1. 11.
반응형
최수종 프로필 나이 아들 누나 학력 딸 키 가족 한국인의밥상 리즈 근황

 

 

프로필

 

나이 : 1962년 12월 28일 출생. 63세

고향 :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동

국적 : 대한민국

본관 : 경주 최씨

신체 : 174센치, 67키로, B형

가족 : 아버지 최세국, 어머니 이숙경, 누나 최지원, 남동생 최혁준, 매형 조하문, 조카 조태관 조경관, 아내 하희라, 아들 최민서, 딸 최윤서

학력 : 동광국민학교 전학 - 서울총무국민학교 졸업 - 배재중학교 졸업 - 배명고등학교 졸업 -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영어영문학 학사 - 칼빈대학교 인문학 명예박사

종교 : 개신교

소속사 : 웰메이드홀딩스

취미 : 볼링, 축구

군대 : 전시근로역

수훈 : 화관문화훈장

데뷔 : 1987년 KBS1 드라마 <사랑이 꽃피는 나무>

 

 

최수종의 아버지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고위 공무원으로, 어린 시절은 꽤 유복했다고 한다. 부모 사이도 화목했으며 아버지가 늘 집안일을 손수 하고 어머니와 자주 포옹하는 모습을 보면서 인생의 롤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그의 아버지는 공무원을 그만둔 뒤 남미 국가인 파라과이에서 사업을 시작했는데, 일이 번창하자 온 가족이 이민을 갔으나 당시 중학생이던 최수종은 학업 때문에 한국에 남았다. 이후 1982년 한국외대 무역학과에 합격했지만 등록하지 않았고 미국으로 넘어가 유학생활을 하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 사업이 사기를 당해 큰 빚을 졌고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외국에서 50대 초에 사망하면서 최수종은 한동안 방황했고 한때 노숙자 생활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지나가던 사람이 신문지를 주면서 덮고 자라고 하는 말을 듣고서 저 사람은 나보다 나아보이지도 않는데 어떤 여유를 가진걸까 반성하고 정신차리고 일을 시작했다.

 


그때부터 생업을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여고생의 과외 알바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여고생의 아버지가 KBS TV제작본부 예능국장 김연진이었고 최수종의 외모를 눈여겨본 국장은 최수종에게 배우를 제의했다. 그리고 그 데뷔작이 1987년 '사랑이 꽃피는 나무'였다. 이 외에도 1979년 무렵부터 제일합섬의 학생복 엘리트의 모델로도 활약했고, 잡지 학생 중앙의 표지 모델로도 발탁되었다.

 


1987년 《사랑이 꽃피는 나무》로 데뷔했는데, 드라마 초반에 나올 때까지만 해도 당대 청춘 스타 최재성, 손창민이 주역이고 최수종은 조연A 정도였다. 그러나 드라마가 가면 갈수록 그의 배역이 자리를 잡아가다가 후반에 가선 이미연을 두고 손창민과 삼각관계의 모습을 보이면서 아예 드라마의 중심에 자리잡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최재성, 손창민과 함께 당대의 청춘 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1988년 《조선왕조 오백년 한중록》에서 사도세자 역을 했는데 이후를 통털어도 《조선왕조 오백년 시리즈》에서는 성인 남자 배우 중 최수종이 막내였다. 최수종은 2020년대에 이르러서는, 조선왕조 오백년에 출연했기 때문에 원로 배우 반열이 된 것이다.

 


이후 1990년에 KBS 일일 드라마 《서울뚝배기》의 주연을 맡아 도지원의 파트너로 대히트를 쳤다. 이로써 소녀들의 우상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냥 그 정도에 머무르지 않는 연기력까지 보였다.

 


1990년 《조선왕조 오백년 대원군》에서는 철종 역할을 하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사실이 중요한 이유는 최수종에게 《조선왕조 오백년 대원군》은 《태조 왕건》 이전의 사극 경력이며 이 경력을 바탕으로 최수종이 《태조 왕건》에서 주인공인 왕건 역으로 캐스팅 되어 훗날 대한민국 사극계의 황태자로 명성을 날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극 경험이 전무한 사람을 사극, 그것도 대하사극에 주인공으로 넣을 수는 없었기에 이전 경력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최수종은 무려 《조선왕조 오백년》이라는 문화재급 사극에 출연한 어마무시한 경력이 있었기에 《태조 왕건》의 주인공 왕건 역할을 받을 수 있었다. 이 드라마에서 철종 캐릭터는 평생 농부로 살다가 갑자기 왕으로 즉위하는 바람에 무식한 데다가 왕이 미쳤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경박한 인간으로 나온다.

 


이후 주 무대를 MBC 쪽으로 전환, 배종옥, 이응경과 함께 연기한 '행복어사전'으로 눈길을 모았고, 또 한 번 배종옥과 연기하면서 음정희까지 곁들인 '도시인'에 출연해 발랄한 청년 스타일로 큰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최진실과 연기한 한국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 《질투》에서 이런 이미지의 정점을 찍었다.

 


이렇게 발랄하고 현대적인 청년 역으로 인기를 끌던 와중에 갑자기 노선을 전환해 《아들과 딸》에 출연했다. 부담스럽고 편파적인 어머니의 애정과 그 와중에 희생 당하는 누나 사이에서 고민하는, 1960-70년대를 살아가는 어느 우유부단한 젊은이 '이귀남' 역을 훌륭하게 연기했다. 이 드라마로 김희애는 인기의 정점을 찍었고, 최수종 역시 자신이 청춘스타 이미지로만 먹고 사는 연기자가 아니란 걸 다시 한 번 증명했다.

 


《파일럿》에서 다시 한 번 발랄한 현대 청년 스타일로 사랑을 받은 후, 몇 개의 드라마에 주연을 맡다가 주무대를 다시 KBS로 옮겼다. 일일 드라마의 새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받은 '바람은 불어도'에서 재치 있는 막내 아들 역할을 맡아 열연했다.

 


그의 주가가 가장 상승했던 시점은 역대 TV 프로그램 시청률 1위를 기록한 드라마인 '첫사랑'(1996~1997)의 주연으로 나왔을 때이다. 이승연, 박상원, 배용준, 최지우 등과 함께 한 이 드라마에서 최수종은 첫사랑인 이승연과 끝내 맺어지지 못하는 비극적인 훈남 이미지를 극적인 연기로 풀어냈다. 최수종 본인은 아직까지도 이 작품 출연을 자신의 연기 인생에서 가장 귀중한 경험으로 꼽고 있다.

 


게다가 1년 뒤에는 유동근, 채시라, 염정아 등과 함께 한 시대극 '야망의 전설'에서 혼신의 연기로 생애 첫 연기대상 수상의 영광을 안게 된다.

 


이렇게 데뷔 때부터 1990년대까지 최수종은 명랑한 청년 스타일과 가족과 시대 환경 속에서 고민하는 남자 스타일을 오가며 히트작을 양산한 연기자였다. 거기다 각종 토크 프로그램에도 출연, 드라마에서 써 먹은 명랑 청년 스타일의 캐릭터에 걸맞은 오도방정과 입담으로 주말 KBS, MBC 쇼 프로그램의 MC와 시청률을 보장하는 게스트로 활동하면서 당대의 예능을 주름잡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도 입담으로 시청률을 올리다 보니 아예 최수종이란 이름을 걸고 토크쇼도 진행했고, 이 토크쇼 역시 높은 시청률을 찍었다. 오늘날로 치면 유재석에서 좀 덜 독하고 좀 더 부담 없이 웃긴 스타일. 특히 일밤에서 이경규와 같이 호흡을 맞추는 최수종의 모습은 최수종이 코미디언으로서도 재능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30대 후반으로 들어가면서 최수종은 두 번째 연기 변신을 시도했다. 그 역할이 KBS가 기획하던 대하드라마 태조 왕건의 주인공 왕건. 대하사극의 아이콘이 된 지금으로선 믿기지 않겠지만, 의외로 이때 사람들의 반응은 "청춘 스타가 무슨 사극이냐?" "최수종이 사극을 한다니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최수종이 왕건? 안 어울리겠는데?" 정도였다. 실제로 태조 왕건이 방송하기 전에 예고편에서 최수종이 왕건으로 나와서 수염을 붙이지 않고, 소리지르는 모습을 본 몇몇 시청자들이 웃기까지 했다. 2000년 3월 3일 공사창립 27주년으로 방송된 '쇼 KBS 2000' 생방송에서 왕건 복장 차림으로 KBS홀 무대에서 선공개된 적이 있었다.

 


사실 최수종이 사극 연기를 한 게 태조 왕건이 처음은 아니었다. 데뷔 초기 조선왕조 5백년 시리즈에서 사도세자와 철종 역을 한 적도 있고, 정보석, 염정아와 함께 한 드라마인 '야망'에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젊은 선비 역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청춘 스타 이미지가 워낙 강했던 데다가 상대적으로 사극 출연작이 많지 않았고, 무게감 있는 군주나 장군 역할을 맡은 적도 없던 최수종의 사극 연기에 대한 우려는 컸었다.

 


그러나 최수종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온유함 속에 강함이 숨어 있는 왕건 역할을 잘 소화하면서 중후한 이미지의 사극 배우, 일명 수종(宗)으로 다시 거듭나게 되었다. 초기에는 궁예 역의 김영철이나 견훤 역의 서인석, 종간 역의 김갑수의 카리스마에 밀리는 감이 있었으나, 명백한 주연으로 등장하는 중반부 이후부터는 폭풍간지였다. 그런데 이때는 최수종이 워낙 오랜만에 왕 역할을 맡다 보니 가래 끓는 소리가 거슬린다는 의견이 꽤 많았는데, 이런 발성법의 문제는 차기 사극 출연작인 해신에서 상당 부분 해소된다.

 


거기다 최수종은 왕건 역을 연기하기 위해 김흥기에게 연기 지도 교육을 받았고, 왕건이란 이미지에 시청자가 몰입하게 만들기 위해 스스로도 즐기던 쇼 프로 게스트 출연을 왕건 방영 기간 동안 일절 하지 않을 정도로 공을 쏟았고, 그런 노력은 노력만큼 보답을 받았다. 그리고 태조 왕건 종영 후 가족오락관에 왕건팀이 나온 왕건 오락관, 출발 드림팀에 왕건 출연진이 나온 왕건 드림팀과 같은 예능 출연을 하기도 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에는 거의 완전한 사극 전문 배우로 전환,《태양인 이제마》, 《해신》, 《대조영》 등 KBS의 대표 사극에서 모두 주연을 꿰찼다. 이런 이유로 2000년대 들어서 드라마를 본 1990년대 이후 출생 세대는 최수종이 사극 전문 배우, 특히 왕이나 장군 전문인 줄 안다.

 


최수종이 사극 전문 배우로 성공한 데에는 그의 체력과 운동 신경이 기여한 바가 컸다고 한다. 최수종은 연예인 축구단에서 센터 포워드를 도맡았을 정도로 만능 스포츠맨이라는 소문이 나 있었으며,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체력도 발군이라는 게 중평이었다. 산에서 들에서 무거운 갑옷 입고 칼과 창을 휘두르며 말을 타고 달려야 하는 사극 연기를 하려면 고도의 체력과 운동 신경을 갖춰야 하는데, 최수종은 그런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운동 능력 외에도 사극에서 최수종의 투입 빈도가 높아진 이유 중에는 동안 외모도 한 몫을 했다는 분석이 있다. 대부분 사극의 주인공 캐릭터가 본격적으로 활약을 하는 시기가 중년 시기라서 기존 사극들은 주연 배우의 나이가 젊어봐야 30대인 상태였고, 이로 인해 청년기를 다룰 때 젊은 배우를 따로 캐스팅해 청년기를 다룬 후 중년 시기로 점프해 시작하거나 해당 배우가 분칠하고 젊은 척을 해야 되는, 손발이 오그라드는 상황을 감수해야 했는데 40대 후반 시절 최수종은 조금만 분칠하고 보정하면 30대 중반까지 충분히 커버할 수 있을 정도로 동안 외모를 갖고 있었다. 이로 인해 주인공의 청년기부터 장년기까지를 한 배우로 표현할 수 있어 인물에 대한 시청자의 몰입도 면에서 좋은 평을 받았다.

 


오랫동안 연예인 축구단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몸으로 얻은 축구 지식 덕분에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KBS 해설위원을 맡기도 했다.

 


2010년에는 '전우'라는 한국전쟁 드라마에서 비교적 현대적인 배역으로 등장했다. 사실 전우도 시대극이지만 이 정도면 다시 연기 변신을 시도한 셈이다. 너무 사극에만 나와서 지겹다, 똑같은 연기만 한다 등 부정적인 반응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코믹한 연기나 정극에서의 진지한 연기도 충분히 소화할 만한 역량이 있는 검증된 배우이기 때문에, 다시 역할을 전환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이렇게 장기간 사극을 하는 바람에 직업병이 생겼는데, 은연중에 말투가 자기도 모르게 사극화된다는 점이다. 이런 건 최수종뿐만 아니라 최재성 등 대부분 사극 위주의 배우들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주변의 시선을 의식해서인지, '전우'의 다음 작품은 현대극인 '프레지던트'로 골랐으며, 절대선이 아니라 악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하지만 프레지던트는 매우 저조한 시청률로 막을 내렸다. 2년 뒤인 2012년에는 광개토태왕의 후속작 대왕의 꿈에 김춘추 역으로 캐스팅되어 또 왕 역할을 맡았다.

 


2012년 9월에 대조영 이후 오랜만에 대하드라마 대왕의 꿈에 출연했는데 이때 불운이 많이 겹쳤다. 촬영 도중 최수종이 탄 말이 빙판길에 미끄러져 넘어지는 바람에 낙마 사고를 당해서 쇄골과 손에 골절상을 입고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긴급 후송되어 2시간이 넘는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번 사극은 별로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았는데 최수종의 부상으로 인한 캐릭터의 부재가 대왕의 꿈 드라마가 흥행이 지지부진했던 이유 중 하나이기도 했다.

 

 

주연 배우가 다쳐 누워 있으니 주인공이 몇 주째 드라마에 나오지 않고 대신 목소리만 줄창 등장한다. 물론 부상을 입고 싶어서 입은 게 아니므로 최수종 탓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이 드라마는 다른 악재도 많았다. 심지어 최수종 뿐만 아니라 대왕의 꿈 전반부 주역이던 선덕여왕 역의 박주미는 자택과 촬영장을 오가는 도중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어 부득이하게 드라마에서 하차하고 해당 배역은 홍은희가 대신 맡기도 했다. 최수종은 사실 후에 밝히길 6개월 이상 입원해서 치료를 받았어야 했는데 2주 만에 억지로 퇴원을 해서 촬영을 감행했다고 밝혔다.

 

 

아무튼 자신이 맡은 김춘추를 다룬 많은 역사 서적을 탐독하면서 배역에 대한 연구를 계속했다고 한다. 심지어 마지막 대사 리딩 연습 때에는 배역 몰입과 마지막이라는 아쉬움 때문에 그만 울음을 터뜨렸을 정도라고. 여담이지만 촬영 현장에서는 수시로 사비를 털어가면서 연기자들에게 밥차를 불러 대접하는 등 출연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어 스태프들에게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상기한 사극 네타가 유명해질대로 유명해진 덕에 2013년 8월 10일 SNL 코리아의 호스트로 출연했을 때 '사극왕 최수종'이란 제목의 디지털 숏컷에서 본인이 본인 역으로 메타 개그를 했는데 본인이 맡았던 주요 배역들이 거의 다 나왔다. 안 나온 배역들도 중간에 최수종이 대본을 들여다 보는 장면에서 <조연> 파트에 다 적혀 있었다. 쌍커풀 메이커에서는 궁예 분장을 한 김민교가 "수종 네 이놈의 차기작은 퇴계 이황이니라." 하고 드립을 날리면서 1000원권 지폐와 최수종의 눈이 합성된 장면이 나오는데 싱크로율이 장난 아니다. 이러다가 퇴계 이황 드라마가 나온다면 캐스팅이 될 지 모른다.

 


어찌되었든 <대왕의 꿈> 외에는 2010년대 들어선 사극 드라마에서 별로 출연하지 않았는데, 사실 이 시기 사극 자체의 파이가 줄어든데다가 <장영실>을 끝으로 KBS에서도 정통 대하드라마의 맥이 끊겨서 출연할 기회 자체가 줄어들었기도 하다.

 


2014년 TV조선 불꽃 속으로에선 포스코 박태준 회장을 모델로 한 박태형으로 분해 일제 시대와 6.25의 혼란을 이겨내고 제철소를 건설하는 기업가 역을 맡았다. 이때가 51세였는데 30대 역을 맡았다.

 


2016년 KBS에서 한중합작으로 방영하는 임진왜란 1592에서 무려 이순신 역할로 캐스팅되었다. 오랜만의 사극 출연이지만 5부작이고 극 자체도 성공했다고 보기는 힘들어 방영 당시 큰 반향은 없었다. 하지만 최수종이 이순신을 연기했다는 사실 자체는 대중들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이후 배우 메타 개그에 중요한 마스터피스(...)를 장식하게 된다.

 


아무튼 사극으로 다져진 그의 입지는 KBS를 대표하는 드라마 배우이면서 방송사를 막론하고 많은 드라마 배우들이 가장 존경하는 선배 연기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서 막내 김일병(김민석 분)이 간호사 리예화(전수진 분)에게 우리말 어투가 아닌데 누나는 어디 출신이십니까?라고 묻자 예화가 '고려인'이라고 답하는데 고려요? 그거 최수종이 세웠다가 유동근한테 망한 나라 아닙니까? 그거 엄청 오래된 나란데 그 나라 사람이 아직 살아 있습니까?라고 말하는 신이 있다.

 

 

 

우습게도 그 드라마에는 최수종의 조카(친누나의 아들)인 조태관이 국경 없는 의사회 소속이자 예화의 남편인 다니엘 스펜서 역으로 출연하고 있었다. 2023년 KBS 모던코리아 방송의 날 특집편에 나와서 최수종 스스로 "안녕하세요. KBS 공무원 최수종입니다."라고 소개할 정도. 2018년 동상이몽에 출연해서 잠깐 언급한 바에 의하면 붓글씨도 제법 잘 쓰는 편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8년 9월 대왕의 꿈 이후 5년 만에 KBS 주말드라마 하나뿐인 내편으로 복귀했다. 드라마 초반에는 안타까운 아버지 캐릭터라는 특성이 돋보였지만 드라마가 진행될수록 '최수종이 막장 드라마에 출연했을 때부터 알아봤다.'라면서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청률의 제왕답게, 무려 49.4%를 찍은 대성공으로, 최수종의 위상이 건재하다는 걸 보여줬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