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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운서 오영실 프로필 남편 나이 이혼 가족 자녀 배우자 시댁 아파트 동치미

by 노란 돌고래 2024. 11. 23.
아나운서 오영실 프로필 남편 나이 이혼 가족 자녀 배우자 시댁 아파트 동치미

 

 

오영실 아나운서 프로필

 

나이 : 1965년 1월 30일 출생. 59세

고향 : 서울특별시 동작구

신체 : 159센치, 49키로

가족 : 남편 남석진, 자녀 장남 남혁수(1992년생), 차남 남종수(1995년생)

학력 : 서울흑석초등학교 졸업 - 중앙대학교사범대학부속여자고등학교 졸업 - 홍익대학교 금속공예학 학사

데뷔 : 1987년 KBS 공채 아나운서 15기

소속사 : 빙고원이엔티

종교 : 개신교

 

 

 

 

1965년 1월 30일에 서울특별시 동작구 지역에서 아버지 오희영과 어머니 천수임 사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오희영은 갑종간부후보생으로 대한민국 육군에 입대한 장교 출신이며 주월한국군사령부 군사정보부대 소속 중령으로 베트남 전쟁에도 참전했다. 그리고 1970년 6월 17일에 베트남 호찌민 시 부근에서 첩보 수집 작전 중에 차량 전복사고로 인해 순직했다. 한달 뒤 7월 29일 유해가 국내에 봉환되어 국립서울현충원 51묘역에 안장되었다.

 

 

 

 

1987년 KBS 공채 아나운서 15기로 데뷔한 오영실은 데뷔한지 벌써 40주년이 되어가고 있을 만큼 오랜 경력을 지니고 있다. 가요톱텐을 위시한 예능프로그램은 물론 TV유치원부터 9시 뉴스 주말 앵커까지 아나운서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활동하였다. 본인의 말로는 서서 출연하는 프로그램은 열린음악회 빼고 모두 다 해본 것 같다며 1997년 육아를 위해 퇴사한 뒤 프리랜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2008년에는 SBS 일일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정하늘 역을 맡아 연기를 펼쳤는데 이때부터 사실상 아나운서라기 보다 연기자로 전업을 본격적으로 시도했다. 따라서 그 시점부터는 아나테이너라는 아나운서와 엔터테이너의 합성어로 불렸다. 아내의 유혹에서 오영실은 정상적인 인물이 아닌 지적장애를 가진 인물이였고 첫 연기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하게 소화하면서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2010년에는 갑상선암이 찾아와 수술을 받고 완치가 되었으며 회복한 이후에 다시 복귀하여 드라마 및 방송에 출연하였다. 복면가왕에서는 '나의 1승을 알리지 말라! 광화문광장'이라는 가명으로 복면을 쓰고 나와 '스앵님! 우리 애 꼭 월스트리트 가야해요! 월스트리트'와 같이 이상우의 그녀를 만나기 100m 전 곡을 불렀다. 첫라운드에서 패한 오영실은 김지연의 찬 바람이 불면'을 부르며 마스크를 벗고 얼굴을 드러냈다.

 

 

 

 

2009년 출연한 라디오스타에서 한창 독한 진행을 하던 MC 4명을 혼자 갖고 노는 원맨쇼를 보여주었다. 사실 방송 당시에는 MC뜰과 같이 출연한 박지윤 아나우서에게 무례하다 싶을 정도로 맥을 끊으며 자기 이야기를 하는 여포급 방송 태도로 인해 시청자들이 뿔났지만 2010년 후반에 들어 방송 3사의 과거 방송 클립들이 유튜브에 업로드 되면서 재평가를 받고 있다. 오죽하면 인터넷의 라스 매니아들에게 '여자 김흥국'으로 칭해지고 있지만 이 당시 욕을 많이 먹은 탓에 이후로 예능 활동이 줄어즐기도 했다.

 

 

 

 

2017년 공영방송 총파업이 진행되더 시기 KBS 파업을 지지하며 하차한 후배 아나운서 출신 정은아가 진행했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대체 DJ로 투입되었다. 그런데 단순 땜빵이 아닌 완전 프로그램 이름까지 바꿔 진행하여 논란이 되었다. 이에 파업에 참가한 선후배 아나운서들은 물론 청취자들까지 비판을 보냈고 당시 노조 아나운서들은 성명서에 후배 아나운서의 용기 있는 결정으로 잠시 비워 둔 자리를 다른 누구도 아닌 같은 한솥밥을 먹었던 전직 선배 아나운서가 넙죽 받아 먹는다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결정인지 묻고 싶다며 비판을 보냈다. 결국 2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고 파업에 참가하지 않은 유지철 아나운서가 그 자리를 대신해서 맡았다. 그리고 원래 DJ를 보았던 정은아가 하차한지 5개월 만에 복귀했다.

 

 

 

 

한편 오영실은 앞서 언급한 대체 DJ를 맡기 직전에 출연한 인생다큐 마이웨이에서 KBS를 관둔 이유가 당시 근무하던 중견 아나운서 10명이 단체로 지방발령을 받았고 권고사직이 있었던 것이라며 자신이 그때 망치로 머리를 맞은 기분이었다고 밝힌 적이 있어 당시의 행도과 배치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피하지 못했다. 본인은 90년대 초 방송민주화 장기 파업 이후 뒷수습 이면을 지켜본 이후로는 "방송 펑크가 나면 무조건 달려가 메꿔라"라고 선배들에게 배운 초심으로 돌아가 방송 고유의 목적외엔 어떤 의미도 부여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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