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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계 국회의원 프로필 키 지역구 고등학교 부인 아내 주미영 판사 자녀 가족 군대 종교

by 노란 돌고래 2025. 3. 22.
박범계 국회의원 프로필 지역구 고등학교 부인 아내 주미영 판사 자녀 가족 군대 종교

 

 

프로필

 

나이 : 1963년 4월 27일 출생. 61세

고향 :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약목리

현 거주지 :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 파랑새 아파트,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당산동5가 데시앙루브

가족 : 2남 3녀 중 셋째부인 주미영(전 판사), 자녀 아들 2

학력 : 초강국민학교 전학 - 서울은천국민학교 졸업 - 영등포중학교 졸업 -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 -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학사 - 한밭대학교 경상대학 경제학학사

종교 : 개신교

키 : 159센치

군대 : 육군 제17보병사단 일병 복무만료

현직 : 제22대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대전 서구 을 지역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윤석열정치탄압대책위원장

지역구 : 대전 서구 을

소속 위원회 : 법제사법위원회

 

 

 

 

1963년 4월 27일,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약목리에서 2남 3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양친은 소아마비를 앓는 장애인이었고, 어머니의 고향은 충청북도 옥천군이었다. 초강초등학교 5학년 때 가족과 함께 상경하여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달동네에 터를 잡고 서울은천초등학교와 영등포중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불우한 가정 환경 때문에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반항아가 되었다고 한다. 남강고등학교에 진학하고 나서는 술과 담배를 하며 방황했고, '갈매기 조나단'이라는 음성 폭력 서클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2학년 말인 1980년 2월, 집단 패싸움에 연루되어 징계를 받고 중퇴했다.

 

 

 


징병검사를 통해 보충역 처분을 받아 군복무를 대신했다. 1983년 11월 19일 육군 방위병으로 입대하여 제17보병사단 소속 소총수로 파출소에서 근무했으며, 보충역 기간 동안 열심히 수험 공부를 하여 복무 기간 중인 1984년 학력고사에 응시하여 연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에 합격했다. 1985년 1월 18일 일병으로 소집해제되었고, 그해 3월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다. 대학생 시절에는 동기들보다 나이가 훨씬 많아 과에서 우두머리가 되었다고 한다. 대학 시절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다.

 

 

 

 

대학 졸업 후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 후(사법연수원 23기) 판사가 된다. 사법연수생 시절 자치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사법연수』 잡지편집장이 되었다. 편집장으로서 연수생들로부터 ‘가장 존경하는 선배 법조인’으로 선정된 노무현을 인터뷰하면서 그와 깊은 인연을 맺게 된다.

 

 

 

 

1994년 서울지법 남부지원을 시작으로 대전지방법원, 전주지방법원 판사를 거치면서 여러 사건들을 처리하기도 하였다. 대전지방법원 판사로 재직 중이던 2002년 10월, 정계 입문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다. 당시 386의 선두 주자로 일컬어지던 김민석 전 의원이 새천년민주당을 탈당하고 정몽준 후보 진영에 합류한 것.

 

 

 

 

이 당시의 상황을 보면 4월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노무현의 지지율이 김대중 대통령의 아들 비리 문제로 떨어진 데다, 6월의 지방선거에서도 참패하고 2002 월드컵 4강 신화의 여파로 대한축구협회장을 겸임하고 있던 정몽준 무소속 의원의 대선 후보 지지율이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에 이어 2위로 올랐다.

 

 

 

 

그래서 새천년민주당 내부의 여러 중진 의원들이 후보 단일화 협의회(후단협)을 결성하여 자당의 노무현 후보에게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촉구하면서 사실상의 사퇴를 요구했는데, 당연히 노무현을 지지할 줄 알았던 김민석이 탈당하고 후단협이 단일 후보로 은근히 밀어주던 정몽준을 지지하자 전 386세대에 충격을 준 것.

 

 

 

 

박범계의 사표를 수리한 대전지방법원장은 당선 가능성도 없는 후보를 돕기 위해 사직한다며 기막혀했다는데, 사실 대선 판세 자체가 이미 정몽준에게도 밀려 3위로 전락하여 소속당에서조차 거의 외면당하던 노무현을 지지하기 위해 잘 나가는 공직을 박차고 나온 것은 아무리 소신이라도 무모한 것으로 보는게 맞았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노무현이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더 넓은 출세길이 열리게 된다. 노무현이 당선되리라고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검찰은 말할 것도 없고 법원 역시 당혹스러운 분위기였는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줄을 댈 사람이라고는 판사 출신 박범계뿐이었던지라 검사고 판사고 할 것 없이 박범계를 찾을 정도였다고. 그리하여 참여정부 초기에 민정제2비서관, 법무비서관으로 일했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청와대에서 나와 대전 서구 을 지역구 공천을 신청했고, 열린우리당 경선을 참여했으나, 당시 지역기반이 튼튼했던 구논회 전 대학학원장에 밀려 당내경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 뒤 구논회가 암으로 작고하면서 열리게 된 2007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려고 했지만 당시 국민중심당 심대평의 당선을 위해 결국 출마를 포기했고 이듬해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통합민주당 후보로 대전광역시 서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이번에는 3위로 낙선하였다. 그러나 낙선 이후에도 통합민주당 대전시당 위원장을 맡으며 다음 선거를 준비하였다. 이 시기에 노무현 前 대통령 서거 후 대전에 둥지를 튼 노 前 대통령의 사위 곽상언 변호사와 함께 변호사 사무실을 열기도 했다.

 

 

 

 

결국 절치부심한 끝에 국회의원 선거에 도전한 지 8년 만인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드디어 자유선진당 이재선 후보를 제치고 43.62%의 득표로 당선되었다. 이때 깨알같아서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지만 후일 코레일의 대표이사로 올라가 코레일 고속철도 자회사 설립 논란의 최전선에서 정부를 비호하는 새누리당 최연혜 후보도 꺾고 올라오게 된다.

 

 

 

 

초선치고 당시 이력이 화려한데, 국회 입성과 동시에 민주당 법률위원장,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간사, 국회쇄신특별위원회 간사 등 노무현 정부의 핵심 정치인으로 급부상했다. 국회 특위의 간사직은 최소 재선 이상의 국회의원이 맡는 관례를 볼 때 박범계의 이력은 확실히 친노 주류의 모습을 띈다.

 

 

 

 

2014년 8월 18일에 임환수 국세청장 청문회 과정에서 송혜교의 탈세사실을 알고도 봐줬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송혜교의 탈세 내용이 드러났다. 처음 언급 당시 송혜교 팬 등 연예계 팬들에게 엄청난 비난을 받았으나, 탈세가 사실로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은 사그라들었다. 이 시기, 2014년 5월부터 10월까지 원내 대변인을 역임하기도 해 초선으로서 맹활약을 보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누리당 이재선 후보와 다시 한 번 격돌하여 15% 이상의 격차(49.53%)로 여유있게 따돌리며 재선에 성공하였다. 현재는 충청권의 대표적인 친노-친문계로 통한다. 그러면서도 비문계의 대표인 박영선하고도 나름 접점이 있다.

 

 

 

 

재선 의원으로 국회의 주요 상임위원회인 법사위원회 간사를 맡으면서 중진에 가까운 중량감을 보여줬고, 박주민, 고 노회찬 의원과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의 황제 보석을 최초로 폭로해 사법정의에 대한 의지를 보여줬다. 이 당시 사법부의 비호로 유마무야됐던 태광그룹의 "황제 보석 사건"은 결국 2년 후인 2018년, 언론특종과 재수감으로 박범계의 선견지명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6년 '국정농단 특별조사위원회'의 간사를 역임했고,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대신해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차려졌는데, 박범계는 위원회의 정치행정분과위원장을 맡으며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에 올랐다.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대전광역시장 출마설이 돌았고 여러 여론조사에서 적합도 1위를 달렸으나 불출마 선언을 함에 따라 더불어민주당 당내 경선이 격전지가 되었다.

 

 

 

 

당대표 출마를 위해 수석대변인직을 사퇴하였다. 박범계는 자신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를 모두 거친 적임자[8]임을 강조하며 자신이 당 대표가 되어야 함을 주장했다. 그러나 전당대회 직전 당대표 출마자들에게 해당되는 최종 3인에 대한 컷오프의 문턱을 통과하지 못했다. 컷오프는 이해찬, 김진표, 송영길이 통과했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는 단수공천을 받으면서 3선에 도전하였고, 57.5% 득표로 당선되었다.

 

 

 

 

2023년 4월 19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출마 선언을 하였고, 2023년 4월 28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당내 경선에서 박광온 후보가 당선되면서 낙선의 고배를 마셨다. 이후 2023년 9월 24일, 박광온 원내대표가 사퇴한 후 치러지는 차기 원내대표 선거에서 불출마를 선언했다.

 

 

 

 

제22대 총선에서 53.35%의 표를 얻어 당선되었다. 이전에 원내대표 경선에 도전했었던 만큼 곧 있을 원내대표 경선에 도전할 가능성이 높다. 2025년 1월 22일 JTBC 대표 정치 토론 프로그램 '특집 썰전'에 전원책 변호사와 함께 토론 진행자로 출연하였다. 2020년 12월 30일 추미애 장관의 후임으로 법무부장관에 내정되었다. 2번 연속으로 판사 출신이 장관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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