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아저씨 근황 이양승 딸 부인 아내 아들 가족 나이 자녀 프로필
프로필
나이 : 1953년 1월 16일 출생. 72세
고향 : 충청북도 괴산군
가족 : 부인 양경자, 아들 2, 딸 1(이은경)
신체 : 159센치, 48키로
대중들에겐 엽기발랄한 이미지로 개그맨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게 박혀있지만, 차력사로서의 길을 갈고닦은 한국 1세대 컨토셔니스트로서 국내서 신체의 한계를 도전해낸 아이콘으로 자리잡은 인물이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 사이 TV 오락 프로그램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인물. 왜소한 체격과 컨토션 즉 탁월한 유연성을 이용한 특기로 인기를 끌었는데, '배드민턴채 통과하기', '여행 가방 속에 들어가기'가 특히 유명하였다.
이 두 가지는 종종 예능에서 보여주는데, 배드민턴 채는 너무 좁기 때문인지 테니스채를 사용하여 여자 연예인이 날씬한 몸을 과시할 때 많이 사용한다. 또 '여행 가방 속에 들어가기'는 반전용으로 가끔 쓰지만 들어가있는 사람이 하는 고생에 비해 꽤나 재미가 없어서인지 신인들이 쫄쫄이를 입고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또다른 특기는 통춤이 있다. 한때 특별한 개인기가 없는 연예인들이 방송에 나와 통춤이라도 추고 분량을 채우기도 했다. 그리고 캠퍼스 영상가요에서 각 화마다 제작된 대학교 PV에서도 무명 시절의 갈갈이 패밀리 비슷한 비중의 까메오 방식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방송에 나온 이양승의 특기를 사람들이 많이 따라하여 배드민턴 채에 걸려 몸이 빠지지 않거나, 가방 속에 들어갔다가 질식하는 사고가 일어나는 등 문제가 되기도 했다.
방송 출연으로 이름을 알린 후 10여년간 이태원 밤무대에서 활동했는데, 이태원 업주들에게 일당 35,000원이라는 낮은 출연료를 받았고, 그마저도 체불당하고 심지어 폭행까지 당하는 등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고 고백했다. 한국의 밤무대를 지배하고 있는 조폭들의 사악하고 비열한 모습을 보여 주는 예이다.
2014년 4월 3일 KBS 2TV 여유만만에 출연하여 같이 공연을 하는 막내딸 이은경 양과, 부인의 이야기 등을 털어놓았다. 낮은 급여조차 체불당하던 것뿐만 아니라 어릴 적 이야기도 나왔는데, 5살에 헤어진 어머니를 찾기 위해 무작정 상경했으나 문구점을 운영하던 외할아버지만 찾을 수 있었고, 결국 적응하지 못해 거기서도 나왔다고 한다. 어려웠던 시절에는 팁을 많이 받는 걸 시기한 동료들이 팁을 받지 못하게 조명을 끄기도 했다고. 일본에서는 꽤 인기가 있는 편이라고 한다.
한편 '통아저씨'란 명칭을 상표권으로 등록하지 못했다고 한다. 특허청에서 조회하면 여러 가지 상품 등으로 어떤 업체에 의해 이미 등록되어 있다. 따라서 통아저씨 본인이 '통아저씨' 라는 이름으로 상표를 내놓지 못한다.
코미디빅리그의 코너 게임폐인에서 예삐공주 이용진이 분장했다. 통아저씨라고 하자 여자에게 말이 너무 심한 거 아니냐고 화내자 그럼 뭐라 부르냐고 묻자 통아가씨라고 한다. 엄청난 유연함을 과시하고 테니스 라켓을 이거 벨트라고 우긴다. 중고&나라에서 박나래가 캐리어 안에서 튀어나와 통아저씨 분장을 하며 등장. 캐리어를 직거래로 구매했는데 구매한 캐리어 안에 진짜 통아저씨가 들어가 있었다.
근황올림픽에서 취재를 했다. 자녀들이 모두 명문대에 갔으며 본인은 분당신도시의 아파트에서 잘 지낸다고 한다. 힘들었던 과거 이야기도 하며 현재는 후계자도 알아 보고 있다고. 댓글에서는 "작은 거인"이라고 하며 통아저씨에게 응원하는 댓글이 수두룩하다. 마지막에의 소원으로는 죽기 전에 친어머니를 만나고 싶다고 하였다.
2024년 5년만엔 근황올림픽에 재차 출연하며 70이 된 연세까지 여장한 모습으로 예능인으로서 여전한 면모를 보여주곤 했다. 지금껏 보여왔던 컨토션 특기는 아직 구사할 수 있으며 마술춤을 새로이 연마하는 등 여전히 개발을 멈추지 않으며, 위 단락 언급한 친어머니와 드디어 해후했다는 근황을 알리기도 했다. 오랜 세월뒤에야 알아버린 어머니와의 이별 배경과 불우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술회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이양승과 비슷한 인물로 에스파 이토가 있다. 2000년대 초반 MBC 예능에 가끔 보였는데, 일밤과 무한도전 초기에 게스트 출연했고, LEVEL5-judgelight- 실사 PV에 특별 출연했다. 반대로 이양승씨가 '한국의 게닌'으로 컨토션을 일본 예능에서 선뵈이는 경우가 의외로 자주 있었다.
어린시절 환경은 어려웠다. 아버지는 청각장애인이었고 어머니는 그가 세살 때 집을 나갔다. 새어머니가 왔으나 외로움을 달래지 못해 14세 때 친어머니를 찾으려 무작정 상경했다. 온갖 잡일을 마다않고 생활하다 운좋게 배운 운전으로 취업을 하고 결혼도 했다.
하지만 아이 4명을 키우는 데 60만원 남짓한 월급으론 턱없이 모자라 결국 고민 끝에 묘기를 익혀 유흥업소 무대에 오르게 됐다. 어린 나이에 집을 나와 학업을 제대로 마치지 못했고 가진 돈도 없는 탓에 몸을 '밑천'삼을 수밖에 없었다.
업소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부단한 연습으로 다양한 묘기를 선보일 수 있었으나 출연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하루아침에 쫓겨나기도 했다. 항의를 해봤지만 오히려 인근 업소까지 출연금지를 당했다. 궁여지책으로 도전한 게 MBC 예능프로그램 '기인열전' 출연이었다.
이양승은 소심한 성격이어서 방송 출연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먹고 살기 위해 다른 방법이 없었다고 한다. 대중의 반응은 그가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뜨거워 '터닝포인트'가 됐다.
하지만 인기는 무한정 지속되지 않았다. 점차 화려한 쇼가 등장하면서 '통아저씨'는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그는 작은 행사부터 밤업소까지 가릴 형편이 못됐다. 방송에서 얻은 인지도 덕분에 업소에서 일을 구하기가 이전보다 쉬워졌다는 것이 그나마 작은 위안이었다.
2010년 그에게 견디기 힘든 일이 닥쳤다. 그해 1월부터 그는 주로 외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업소에 출연하게 됐다. 성인쇼가 매일 진행되는 그곳에서 막내딸과 함께 15분간 무대에 올라 받기로 한 금액은 고작 하루 5만원. 차 기름값과 의상비 등을 제외하면 남는 게 별로 없었는데 업소 측이 출연료 지급을 차일피일 미뤄 무대에 서는 횟수가 늘어났다.
"세 아이의 대학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을 해야 했죠. 대학에 보내주지 못한 막내에겐 너무 미안했습니다."
업소 주인은 어느날 운영권 지분 18%를 9000만원에 사라고 제안했다. 등기 설정은 해주지 못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이씨는 지인 등과 협의한 끝에 거절했다.
또 하루는 일본의 한 방송국이 예고 없이 공연 촬영을 나왔다. 물론 그와 전혀 협의가 없었다. 업소 주인이 그 방송사와 일방적으로 계약했다고 한다. 그는 곧바로 업소를 나와 아예 발길을 끊었다. 출연료라도 받기 위해 경찰과 구청을 찾아갔으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거꾸로 업소 주인이 영업방해 혐의로 고소하는 바람에 곤욕만 치렀다.
다행히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그 과정에서 난생 처음 변호사의 조력까지 받는 등 맘고생을 했다. 이후 그는 우스꽝스런 옷을 입고 웃음을 파는 사람이라고 해서 우습게 대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다고 씁쓸해 했다.